매일신문

신창석칼럼-보이지 않는 것의 무거움

올 여름 하늘은 엄청난 비를 내려 원망을 듣고 있지만, 머지않아 그 하늘은 가장 밝은 별들을 보여줄 것이다. 별을 보며 별 하나 나 하나 불러보면 나는 진정한 자신을 느끼게 되고, 별 둘 나 둘하고 이어가면 우리는 진정한 옆 사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별을 바라보는 순간에 가장 가까이 우리 자신에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별은 인간의 적나라한 운명과 닮았기 때문이다. 영원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는 별의 운명은 불멸의 영혼과 사멸의 육체로 결합된 인간의 운명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반짝이는 별을 보며 영원을 꿈꾸고, 떨어지는 별을 보고 죽음을 떠올린다.

그런데 낮에도 별은 떨어진다. 다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떨어지는 별 또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스스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별을 떨어뜨리는 것은 인력이다. 그러나 인력 그 자체는 떨어지지도 않을뿐더러 보이지도 않는다. 전등은 어둠을 밝힌다.

그러나 전등의 빛도 보이지 않는 전기의 표현일 뿐이다. 텔레비전의 화려한 화면은 우리를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색상이나 소리는 보이지 않는 전파의 표현일 뿐이다. 결국 보이게 하는 것 그 자체는 결코 보이지 않는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것들이 이 세상 전부도 아니요, 보이는 것들이 스스로 세상을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의 표현이요, 드러나는 방식이다.

결국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원인으로 삼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것들은 보이는 것을 자신의 결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보이는 현실을 움직이고 좌우하는 것은 결국 보이지 않는 것들이 아닌가?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보존하고자 하는가? 물론 무너져 내리는 문화재를 수리하고 재건하는 것은 시급한 일이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번듯이 세워놓는다고 문화가 보존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자신도 잘 모르는 수많은 문화축제를 개최하고 외국 손님들을 불러모은다고 우리 문화의 우수성이 알려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 스스로 숨쉬지도 않고 생활하지도 않는 문화는 더 이상 문화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경제적 발전을 바라는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현 정부는 첨단과학과 신지식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투자와 발굴을 거듭해왔다. 물론 첨단과학과 신지식인은 당장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첨단과학은 첨단기계를 갖춘 공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첨단적 사고에서 나오며, 첨단적 사고는 최첨단 학문에서 태동하는 것이 아니라, 기초학문에서 태동한다.

또한 신지식인은 스스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교육을 통하여 배출되며, 새로운 교육은 새 과목을 만드는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 과목을 완성시키는데서 나온다. 경제적 발전을 위하여 첨단과학과 신지식인의 현실적 필요성을 직시했다면, 나아가 실용성도 보이지 않고 돈도 보이지 않는 기초학문과 전통적 교육의 무거움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정당 정치의 안정과 정치 개혁을 바라는가? 천년을 갈 것 같던 새천년 민주당은 한번의 집권도 마무리짓기 전에 이번 선거의 결과로 인하여 신당 창당의 판을 짜기에 여념이 없다. 물론 국회의 과반수가 넘는 의석을 야당이 차지했다는 현실을 의식했기 때문이리라.

현실적으로 과반수가 넘는 의석 수로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알았다면, 그러한 선거 결과를 낸 원인도 읽어야 할 것이다. 결국 민심의 보이지 않는 무거움을 읽어야 할 것이다. 민심은 현 정부의 부패상을 단순히 징벌하는 것일까? 아니면 한나라당이 거의 모든 법을 폐기하거나 제정할 수 있는 막강한 위력을 어떻게 사용하나 보려는 것일까?

보이는 것을 무시하는 것은 그냥 어리석을 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무시하는 것은 만용에 가깝다. 낮에도 떨어지는 별을 볼 수 있다면, 보이지 않는 것의 무거움을 가벼이 여기지 않을 것이다.

신창석 대구가톨릭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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