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신당(新黨)을 창당할 모양이다. 지금의 간판으로는 12월 대선때 대권은 고사하고 쪽박차기 딱맞겠다는 위기감에 급한 대로 간판이라도 바꿔달고 보자는 심사임이 분명하다.
신당을 만들려면 또 한번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 이름부터 붙여야 할텐데 DJ그룹이 그동안 창당하거나 이름 바꾼 당(黨)을 보면 87년 평민당을 기준으로 계산해도 딱 15년만에 무려 5가지.
평화, 신민, 민주, 새정치, 새천년 등 애국적이고 고상한 단어는 있는 대로 다 써먹다시피 하다보니 이번 6번째 신당에는 웬만한 국어학자나 작명가에게 부탁해봐도 마땅한 이름 찾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174년동안 한가지 당이름으로 15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미국 클린턴의 민주당이나 148년간 공화당이란 당명을 변함없이 지키며 분당싸움 없이 18명의 대통령을 꾸준히 탄생시킨 부시정권의 눈에는 민주당식 간판달기가 '정치괴담' 쯤으로 비칠 만하다.
더구나 이번에 태어날 신당은 창당과 동시에 민주당과 다시 통합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고 보면 통합후 또다른 일곱번째의 새이름을 짓지 말란 법도 없다.
'평화'를 붙이고도 정치투쟁만 난무했고 '신민주'를 붙이고도 여전히 비민주적 계파정치란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새정치'와 '새천년'을 붙였음에도 20세기식 낡은 부패정치의 악습에서 헤어나지 못한채 오히려 낡은 부패정치끝에 간판을 갈아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른 간판바꾸기 역사였다.
내부의 개혁은 없고 겉간판만 바꾸는 정치는 그야말로 겉과 속이 다른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정치다.마치 야만스럽다는 비난을 피해 보려고 보신탕이란 간판을 보양탕이나 사철탕으로 바꿔 달아도 국솥에 든 고기가 여전히 개고기면 그집은 여전히 개장국집인 것과 같다.
민주당의 신당 발상이 왠지 고깝게 보이는 것은 그러한 보양탕 논리뿐이 아니라 비정하리만치 타산적인 정치집단이란 인상이 남아서다.
그들 스스로 국민경선으로 뽑아놓은 대통령 후보의 인기도가 '노풍'이 불던 수준으로 변함없이 상승, 유지돼 왔었어도 신당 생각을 품었을까 짐작해 보면 그들이 신(信) 없는 집단이란 느낌을 가지게 된다. 주군(主君)인 DJ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그를 버리다시피 떼놓는 분위기에서는 불충(不忠)한 집단의 이미지도 느끼게 된다.
또한 월드컵과 함께 급부상한 정몽준 의원이라는 새로운 킹카드가 보이자 남의 패를 이용해 대권연장이라는 판돈을 먹으려드는 듯한 태도에서는 의(義) 없는 집단의 이미지도 읽게 된다.
그래서 이번 민주당의 신당 구상은 정당정치의 보편적인 '정치'라기 보다는 양두구육식의 신의와 충절이 없는 간판 바꾸기란 인상이 더 강하게 비친다.
미국의 민주당이 1861년 공화당의 링컨에게 패배한 이후 무려 72년간 단 2기를 제외하고는 계속 야당만 해오면서도 줄곧 진보적 정치이념을 고수하고 술수 없는 깨끗한 정당정치를 편 끝에 다시 정권을 잡았듯이 한국의 민주당도 멀리 내다보는 큰 정치를 펴라.
설사 12월 대선에서 패배한다 해도 권토중래,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쌓아 정권 재창출에 도전하는 성숙된 정치력을 보이는 것이 속들여다 보이는 간판 바꿔달기보다는 다음 집권에 더 희망적인 방도가 될 것이다.
얼마만에, 어떻게 얻어냈던 호남정권이었나. 국민들이 실패한 정권으로 심판한다 해도 다시 꾸준히 신뢰를 얻으면 되돌아서는 것이 정치민심이다. 간판바꾸기 같은 꼼수정치나 보이다가 끝내 주저앉고 말면 정권재창출은 몇십년 물 건너 갈지도 모른다.
지더라도 '페어'하게 지는 모습을 보여라. 신의와 충절이 있는 정치집단이란 이미지를 심으면서 국민의 신망을 얻는다면 지금의 실패는 심판받더라도 언젠가 그 신망은 또 한번의 재집권을 약속해주는 정치적 거름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가야 할 길은 분명해진다.
6번째의 간판을 바꿔달지 않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한가지, 국민들은 더이상 간판만 바꾸고 헤쳐모이는 낡아빠진 정치술수를 보고싶지도 속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죽든 살든 지금 간판 메고 그대로 가라. 이기면 이기고, 지더라도 다음이나마 기약해볼 수 있는 길은 그 길뿐이고 그래야 이 나라의 정치가 바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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