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사람치고는 한학에 꽤나 조예가 깊은 가까운 벗이 대학 시절 내게 '포곡'이라는 꽤 근사한 별호를 지어 주었다. 훗날 이름께나 있는 작가가 될 지도 모를 터인데, 그럴싸한 별호 하나쯤 없다 해서야 말이 되느냐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면서 자상하게 뜻풀이까지 잊지 않았다. 내 성이 현풍(玄風) 곽가이니 이 '곽가'를 높여서 부르면 곽공(郭公)이 되는데, 곽공은 원래 뻐꾸기를 가리키는 한자말이고 이를 달리는 포곡조(布穀鳥)라 이름하기에 거기서 '새 조(鳥)'자를 빼어버리고 그냥 부르기 쉽게 '포곡' 두 글자로 했다는 것이다.
나는 벗의 사려 깊은 정리(情理)가 담긴 이 별호가 썩 구미(口味)에 당겼다. 어딘지 모르게 고졸(古拙)하면서 농익은맛이 풍겨나는 점에 무엇보다 마음이 끌렸다. 결국 나는 그 즈음부터 내 별호를 '포곡'이라 쓰기로 작정했다.
얼마 전 서울 사는 어느 여류 수필가 한 분이 여행 떠난 남편의 안부를 묻는 편지형식의 글에서 '다지(茶知) 선생'이라 허두를 낸 것을 보고는, 나도 아내더러 '포곡 선생'이라고 한번 불려 봤으면 하는 어줍잖은 희망을 은근슬쩍 내비친 적이 있다.
돌아온 아내의 대답이 재미있다. 자신이 여태껏 글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사람이니 만큼 그런 고상한 호칭을 쓴다 해 봐야 도무지 격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을 것이라고.
듣고 보니 그도 그럴법하단 생각이 들었다. 한날한시에 난 손가락도 길고 짧은 차이가 있다고 형제자매가 글쓰기에는 어찌 그리도 닮지 않았는지, 큰처남은 오래 전부터 중앙무대에서 꽤나 알려진 동화작가로 명성이 자자한데 반해, 아내는 자신의 편지 한 장 반반하게 엮어내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글 무지렁이인 걸 보면 말이다.
못내 아쉽지만 어쩔 도리가 있을쏘냐. 사람이 다 같을 수는 없는 게 세상 이치인 것을. 이래서 나는 포곡 선생으로 불리고싶은 그 소망은 당분간 가슴에 고이 묻어두기로 했다.
앞으로 어떻게 기회가 닿아 풍광 좋은 곳에다 자그마한 집필 공간이라도 하나 마련한다면 나는 당호(堂號)를 '운하포곡재(雲下布穀齋)'라고 지을 작정이다. 구름 비낀 아래 뻐꾸기 울음소리 한가로운 집. 어쩐지 어감이 꽤나 유유하고 멋스럽지 아니한가.
곽흥열 수필가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