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림이야기-2)권력자와 미술

루브르미술관이 소장한 걸작 '나폴레옹1세의 대관식'. 나폴레옹이 아내 조세핀에게 황후의 관을 씌우는 장면이 장엄하게 그려져 있는 역사화다.

어용화가였던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는 이를 완성하는데 무려 3년의 시간을 쏟았다. 대중선동과 여론조작의 명수인 나폴레옹이 일일이 간섭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머니가 참석하지 않았는데도 그림 뒤편에 버젓이 앉아 있게 했고, 뻣뻣했던 교황의 자세도 강복(降福)하는 장면으로 수차례 바꿔 그리게 했다.

독재자가 예술을 통해 위용을 과시하려는 과정에서 예술가는 무시되고 상처받기 일쑤다.김영삼 전 대통령 초상화를 그린 서양화가 이원희(계명대 교수)씨의 회고. "초상화를 그리려면 모델의 표정과 분위기를 알아야 하는 게 기본입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대통령 초상화를 그린 화가중 대통령과 장시간 독대한 것은 제가 처음이란 걸 알고 무척 놀랐습니다".

그전만해도 화가들이 대통령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사진을 참고해 초상화를 그린 것이다. 떳떳하지 못한 권력이 예술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아니겠는가.

5공때의 얘기. "서양화가이자 대학교수인 모씨는 대통령 초상화 제작을 의뢰받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청와대 관계자 앞에서는 차마 거절하지 못했지만, 자칫 학생들에게 멱살잡이 당하는 어용교수 신세가 될 판이라 안절부절못할 수밖에…. 그는 청와대에 불려다니다 '카펫 알레르기'라는 황당한 이유를 대고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왔다고"

후문에는 나중에 대통령의 형이 직접 고른 화가가 초상화를 그렸는데, 그 화가는 예전에 간판그림을 그리던 사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문인지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는 대부분 근엄하고 위엄에 가득찬 표정을 짓고 있다. 생생한 인간의 표정이 아닌 탓에 먼훗날 다소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비쳐지지나 않을까.

영국의 최고 화가 루시안 프로이드(현재 79세)의 일화. 지난 99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초상화 제작을 의뢰받은 프로이드는 몇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여왕이 직접 자신의 아틀리에로 찾아와야 하고, 최소 60회 이상 포즈를 취해줄 것…".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프로이드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정직한' 초상화를 내놓아 영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초상화란 실제보다 훨씬 젊고 예쁘게 그려야만 주문자가 좋아하는 법이다.

근데 여왕을 있는 그대로 쭈그렁 할머니(현재 75세)로 그려놓았으니 난리가 날게 뻔하다. 일부에서는 "아첨하지 않은 가장 훌륭한 왕실 초상화"라고 치켜세운 반면, 일부에서는 "불충(?)한 프로이드를 런던타워에 투옥해야 한다"고 했다나.우리로서는 예술가들이 웅지를 맘껏 펼 수 있는 그곳 분위기가 부럽기만 하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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