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철가방'의 승리

친구 둘이 승용차를 몰고가다 국도변 논두렁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운전하던 승용차 주인은 멀쩡했고 옆자리 친구는 의식불명인 채 피투성이가 됐다.그는 친구를 들쳐업고 대구까지 차를 몰고와 종합병원에 입원시킨 후 귀가했다. 그런데 며칠후 정작 죽기는 승용차주인이 죽었다.

중상을 입은 친구는 빨리 병원에 데려다 준 덕분에 살았고, 그는 겉은 멀쩡한 채로 친구 살리는데 정신이 팔려 배속에서 장파열이 진행되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속골병은 그래서 위험하다.

▲오토바이로 자장면 배달하다 승용차에 받혀 허리통증에 속골병이 든 서울의 중국집 배달원 김인중씨가 '나홀로 소송'끝에 대형로펌사를 꺾었다는 소식은 억눌리고 찌들린 우리들을 참으로 시원하게 했다. 철가방, 세상에 가장 힘없는 자의 승리, '대~한민국'은 이럴 때 치는 박수였다.

▲김씨는 허리와 목의 통증이 너무나 심했지만 의사는 전치2주의 진단만 내렸다. 보험사측은 시간 끌어봤자 손해니 75만원에 합의 보자고 했고,종합병원에서마저 보험사 허가 있어야 MRI촬영이 가능하다며 보험사 편을 들어 김씨는 절망했다.

이 때부터 그는 인터넷 사이트를 뒤진 끝에 손해배상 청구소를 제기했고, 그제서야 보험사는 합의금을 300, 500, 700만원으로 올려가며 매달렸으며, 피해자를 몰아 붙이는 보험사의 관행화된 횡포에 합의를 거부한 김씨는 마침내지난해 10월 서울지법에서 승리, 당초 보험사가 제시한 합의금 75만원의 20배인 1천500만원을 받아낸 것이다.

▲세상은 참 고르지 않지만 그래도 살맛은 있다. 법조문 하나 모르는 '철가방'이 법에 귀신인 로펌사를 이기다니, 앞에 있으면 입맞추며 칭찬해주고 싶다.철가방 김일중씨는 진공청소기 김남일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김남일은 월드컵에서 '발목염좌', 즉 발목근육을 삔 후 며칠전 K리그에 출장할 때까지 두달동안 얼마나많은 격려와 걱정을 받았던가.

숱한 소녀들이 서로 대신 아파주겠다고 난리치지 않았던가? 틀림없이 의사들은 두달, 아니 석달의 진단서라도 끊어주었을 것이다.같은 두달인데도 우리의 이름없는 서민 김씨의 '허리염좌'는 누구 하나 걱정해 주지 않았다.

▲법 모르고 힘 없는 피해자일수록 보험사 횡포에 대한 불만의 정도는 더 심할 터이다. 당연히 이들은 소송에도 약해서 오히려 그것이 보험사에 의해악용되는 현실이다. 소보원이 최근 밝힌 바, 국내 35개 보험사가 지난해까지 5년동안 교통사고 보험금지급과 관련해 소비자상대 소송을 제기한 건수가 무려 2천200여건이라고 한다.

보험금을 안주거나 액수를 깎기 위한 '채무부존재 확인소송'들이다. 이쯤 되면 법을 만든 ×도 무섭지만 법을 아는 ×은 더 무섭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정치판이 개판인 이 시점에서 함께 생각해보자는 뜻이다.

강건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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