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끝난 지 달포가 겨우 지났는데 뜨거웠던 6월의 그 함성, 그 흥분, 그 감격이 벌써 아스라하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6월의 신화는 꿈결이었던 듯 이제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나 축구 대표팀을 맡아 세계를 놀라게 했던 거스 히딩크 감독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국민적 추앙은 가히 신앙 수준이다. 16강이 목표(?)였던 한국 축구를 세계 4강에 올려놓았으니 히딩크를 존경하고 모든 분야에서 다투어 그를 닮으려는 것이 아무 이상할 것 없긴 하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4강에까지 오른 데는 히딩크의 공이 무엇보다 큰 것은 사실이다. 온갖 외풍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앞만 보고 대표선수들을 조련한 히딩크의 산 같은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히딩크의 꿋꿋함 뒤에는 믿고 따른 23명의 태극전사들이 있었다.
여기다 누구보다 히딩크가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 12번째 태극전사 4천700만 국민의 성원은 정말 히딩크에게 큰 힘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비록 한때 '오대영'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지만 월드컵이 한창 진행되던 중간에 낙마한 대표팀 감독도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 국민들이 히딩크에게보내준 신뢰는 그야말로 전폭적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월드컵 4강의 저력
언론과 민간경제연구소는 히딩크의 성공을 '원칙에 충실하고 기본을 중시한 때문'이라 분석하며 훈련과 전략, 선수선발 등에서 외풍과 연고,파벌을 배제하고 소신대로 추진한 덕분이라 분석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우리 국민들은 히딩크에게 이전의 다른 어떤 감독도 갖지 못했던 전권을 맡기고또 그가 전권을 행사하도록 여건을 만들어 준 것이다.
세계적 기업인 스위스의 네슬레는 최고 경영자 9명 중 스위스인이 한 사람도 없으면서도 성공한 기업이다. 이처럼 히딩크는 내부의 아무하고도 경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히딩크의 선수 선발과 훈련이 외풍을 이겨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히딩크의 성공 이후 한때 많은 CEO(최고경영자)들이 히딩크를 닮았다고 생각하는 신드롬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히딩크처럼 공과 사를 분명히 구분짓는 것은 우리네 풍토가 쉽사리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다. 히딩크는 선수 기용에서도, 선수들의 훈련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관철시켰다.
대구 연고 프로축구팀 창단을 위한 준비작업이 대구의 지도층을 중심으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이런 중에 한편에서는 창단될 축구팀의 운영권을 놓고 물밑 탐색전이 한창이라는 소문이다. 축구 발전과 대구 프로 축구팀의 건강한 탄생을 위한 대의가 앞서는 힘겨루기이길 바란다. 그러면서 히딩크를 신뢰하고 지지와 성원을 보냈던 만큼 새로 생길 대구 축구팀에도 애정과 격려를 보낼 것을 제안한다. 그래서 또다른 히딩크 감독의 탄생을 기대한다.
국가발전의 원동력
월드컵 축구에서의 4강은 대단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온 국민을 하나로 묶어놓은 화합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4강 신화에 도취돼 있을 수만은 없다.
사실 기자는 이번 2002 한일월드컵에서 우승한 브라질이나 우승 후보였던 아르헨티나보다 오히려월드컵 본선에도 못 오른 네덜란드나 16강에도 들지 못한 프랑스가 더 부러운 것이 사실이다. 이제 월드컵 4강에 오른 저력을 국가 발전 동력으로 만들어야 한다.이것이 우리가 또다른 히딩크를 기다리는 이유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대부였던 관중이 노나라에서 체포되어 제나라로 호송될 때였다. 국경 경비병이 무릎을 꿇고 후대하면서 "제나라에서 등용된다면 나에게는 무엇으로 보답하겠느냐?"고 물었다. 관중은 "현자를 발탁하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겠다. 그대에게는 무엇으로 보답할까?" 하고 되물었다. 섭섭해진 경비병이관중을 원망했음은 물론이다.
히딩크에겐 아무도 "보답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히딩크도 아무와 경쟁하지 않았다. 대신 전 국민의 성원이 있었다. 비록 돌덩이라도 배 위에서는떠있을 수 있지만 아무리 가벼운 동전 하나라도 혼자서는 바다에 가라앉고 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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