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기장 김정옥 도예전

"우리 민족의 얼은 결국 항아리에 멎었다. 조선백자는 그야말로 하늘에 순응하는 민족이 아니고서는 낳을 수 없는 지고의 예술이다. 내가 즐겨 항아리를 그리는 것도 단순한 취미나 기호만이 아니라, 그러한 조상들의 유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가 파리를 떠나며 남긴 말이다.

조선백자는 화려하지 않아 홀로 버려 두어도 결코 외롭지 않다. 여럿 가운데 놓여져 있을 때도 내세우는 법은 없지만 기품은 잃지 않는다. 특히 평민들이 썼던 '민요(民窯)백자'는 '세련'과 거리가 멀어도 마주하고 나면 언제나 가슴속에 따스한 잔영(殘影)으로 남는다. 백자달항아리는바탕이 무지(無地)이면서도 긴장감을 주기 보다 수굿한 품새로 보는 이로 하여금 넉넉한 포만감에 잦아들게 한다.

14일부터 오는 23일까지 대구MBC 갤러리M에서 열리는 '백산 김정옥 도예전'은 조선 민요 백자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다. 대구문화방송 창사 39주년 기념행사로 마련한 이번 도예전은 대한민국 중요 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 김정옥(61)씨의 대표작 40여점을 선보이고 있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문경 '영남요(嶺南窯)' 백산(白山) 김정옥(金正玉)씨는 오늘날 조선 민요백자의 맥을 잇는 명장(名匠)이다. 문경은 16세기초 분청사기시대부터 도자기가 시작되어 임진왜란의 전화(戰禍)에도 가마의 불이 꺼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온 '사깃골'로 유명하다. 문경읍 관음리 '사기쟁이' 집안에서태어난 김정옥씨는 18세 때 선친으로부터 본격 도자기 수업을 받았다.

"당시야 지금처럼 도자기 만드는 사람이 대접 옳게 받기나 했습니까. 완전히 막노동꾼이었죠 뭐. 만드는 기물들도 주병이나 차그릇은 없었어요. 주로 불켜는 호롱이나 요강 따위를 만들었지요. 그러니 일은 고되고 밥벌이도 시원찮아 흙 만지겠다는 사람이 드물었어요. 그렇지만 할아버지, 아버지, 형님이 해온 일이니 같이 할 수밖에…".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통'이니 '장인(匠人)'이니 하는 말은 생소했다. 그릇의 모양도, 색태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웃어른들이 가르쳐 준대로 밥그릇은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들고 문양도 청화(靑華)안료 듬뿍 찍어 빈자리 한자락 채우면 그만이었다.

1970년대 이후부터 차(茶)가 보급되고 옛 것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김씨의 전통 도자기는 새롭게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이 밀어닥친 후 북미,유럽 등지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금 그의 작품은 미국 스미소니언 국립 자연사 박물관, 캐나다 왕립 박물관에서 상설 전시를 하고 있다. 또 1999년 이후에는 문경대학 도예과 명예교수로 추대되고 전승공예대전 심사위원도 맡게 되고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지금 나의 작업은 백자에서 분청사기, 차그릇 등으로 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문양의 경우도 집안에서 해내려 오던 초화문(草花紋))에서 탈피, 어문(魚紋),용문(龍紋) 등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그러나 나의 작업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하나는, 외국에 우리 도자기 바로 알리기입니다. 우리가 일본에게서 도자기를배웠다니 말이 됩니까".

이번 전시회가 대구시민에게나마 우리 도자기를 올바르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김씨는 전통 민요 백자의 맥을 전수하기 위해 큰아들 경식(35)씨를 가르치는데 게을리 하지않고 있다.

전충진기자 cjjeon@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