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가을이 왔다.

한 인간이 오고 있다.

다시 가을이 왔다.

그는 숨쉬기 위해 물과 하늘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동네는 물 위 별자리로 올라 온다.

사방에서 돌덩이를 벗은 생명체들이 첫 그림자를 세워보고 있다. 형상이 살아나는 즉시 구름은 뜨고 사람은 기어가고 시간은 일생을 지워버린다.

모든 뿌리들이 생명나무를 꿈꾸기 시작한다.

- 신대철 '서시'

시를 읽을 때 단지 한 구절이 좋아서 애송하는 경우가 있다. 이 시도 1, 2 행이 읽는 이의 마음을 때린다. 가을이 오고 가을과 함께 오는 한 인간은 누구일까? 애인, 그리움, 추억 아니면 형이상학적 진리….

세째 연의 "동네는 물 위 별자리로 올라온다"는 구절은 최근 홍수로 물에 잠긴 남쪽 어느 마을을 상기해 보면 이해가 쉽다. 그 마을을 단지 인간이 거주하는 마을만이 아니라 사색과 사유가 살고 있는 정신의 마을로 생각해보자.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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