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광해군 시절부터 한·일 합병 이전까지 일본이 세차례에 걸쳐 울릉도·독도의 영토권 분쟁을 일으켰으며 결국 독도를 포함한 울릉도 전체를 한국령으로 인정했다는 내용이 담긴 1936년판 책이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책은 일본 언론인 무스 사초오가 1936년4월 경북도의 도움을 받아 저술한 '경북대감'으로 최근 경북도 홍영선 법무담당관이 고서적상을 통해 구입한 것.
'경북대감'의 마지막 부분인 울릉도 편에서 저자는 섬의 연혁을 설명한뒤 "이섬은 예로부터 우산국(于山國) 혹은 우릉도(羽陵島)·무릉도(武陵島)·울릉도(蔚陵島)·울릉도(鬱陵島) 또는 죽도(竹島)라고 불렸다"고 했다.
1614년과 1693년 및 1883년 세차례 걸쳐 일본과의 섬 영토권문제가 발생했으며 결국 일본은 포기의사를 밝히고 일본 주민들의 도항을 금지토록 했다고 설명했다.
첫번째 분쟁은 "1614년(광해군 6년) 섬 소속 문제로 대마도(對馬島)의 모리무네 요시도모(守宗義智)가 에도(江戶) 막부의 명을 받아 조선에 사신으로 왔으나 조선·일본·명나라 3국의 복잡한 사정으로 50년간 해결을 보지 못했다"는 것.
그러나 하가시야먀(東山)천황에 이르러 또다시 분쟁이 발생, 겐로쿠(元祿) 6년(1693) 10월에 드디어 일본은 죽도(竹島)포기를 천명하고 마쓰다이라 호우키모리(松平伯耆守)로 하여금 산잉(山陰:시마네·돗도리현)지방 백성의 도항을 금지시켜 게이쵸우(慶長)19년(1614)이래 80년간의 현안 문제에서 마침내 조선이 승리하게 됐다고 서술했다.
마지막 분쟁에 대해 그는 "1883년에 어업과 벌목을 위해 이 섬으로 가는 일본인이 많았으나 김옥균 등의 활동으로 한국정부의 소속으로 인정돼 일본인의 도항을 금지시켰다"고 덧붙였다.
홍영선 법무담당관은 "일본정부가 이미 1905년에 독도를 죽도(다케시마)로 표기해 시마네현 오키섬의 부속 섬으로 한다는 시마네현 고시가 나온 상태에서 이 책이 서술됐다"며 "이로 미뤄본다면 독도를 포함한 울릉도 전체를 한국령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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