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어느 재일교포의 마지막 절규

지금 재일교포 사회에는 한 교포 사업가의 죽음 과정이 화제다. 경상도 출신인그는 10대에 일본으로 건너와 갖은 고생을 다한 끝에 일본인도 부러워할 만큼 사업에 성공했다.

그 는 교포사회와 조국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한 인물이다. 그같은 성공에 이르기까지 그는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일본사회에 동화해 살아왔다. 무심코 내뱉는 감탄사조차 절로 일본어가 튀어나올 정도로 일본인보다 더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그런 그가 심장질환으로 투병생활을 하면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간간이 한국말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오 미즈 쵸다이'보다는 '물 좀 다오'라는 투박한 경상도 말을 썼다. 한국말은 기초적인 것 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인 부인과 자식, 며느리는 물론 간호사조차(일본은 대부분 간호사가 간병) 조금씩 낭패감에 휩싸였다.

그런 현상은 병환이 깊어질 수록 더 심해졌다. 종국에는 완전히 한국말만 썼다. 가족들은 '물 좀 다오'라는 말을 겨우 알아 듣고 나면 '잣죽 좀 다오'에서 막혔다. 답답한 가족들은 일본말로 얘기할 것을 주문했지만 그는 그 잘하던 일본말을 더듬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그는 가족이 자리를 뜬 병실에서 안간힘을 다 해 간호사를 불렀다. 그리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외쳤다. "어메(엄마), 잣 죽이 먹고 싶어. 잣죽 좀 다오". 그의 마지막 소원인 셈이었다.

하지만 간호사는 알아듣지 못했다.어느 교포로부터 전해들은 이 얘기는 '민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하고 있다.

김상근(경상북도 도쿄사무소장·통상주재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