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직사회 모순 바로잡겠다"

"똑같은 대구시 공무원인데 구청 공무원은 20년이 지나도 7급인 반면 시청 공무원은 6급으로 승진, 5급 사무관을 바라봅니다. 이것이 바른 인사입니까. 왜 구·군 상호간의 직급 조정 및 진급의 폭을 맞춰주지 않습니까".

지난 12일 대구 동구청직장협의회 인터넷 사이트 자유게시판엔 조해녕 대구시장과 임대윤 동구청장에게 보내는 '상소문'이라는 글이 올라 동료 공무원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시와 구청간 인사의 불합리성을 지적한 이 글은 인터넷을 타고 삽시간에 전 구청 직협 사이트로 번졌고 현재까지 조회건수는 동구청만 2천건에 육박하고 있다.

"입으로만 말해선 아무 소용없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이제 우리가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등의 관련 글이 잇따랐고 '시청직원'이란 이름으로 올린 해명 글도 떴다.

민선 3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지역 공무원 사회가 크게 변하고 있다.

하위 공무원들은 예전에는 말도 꺼내기 힘들었던 크고 작은 내부 문제점들을 '공무원직장협의회'라는 창구를 통해 점차 공론화시키고 있다.

14일 중구청직장협의회 홈페이지엔 '우리가 배달부인가'라는 제목으로 '왜 구청직원이 세금고지서를 일일이 돌려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글이 게재돼 있었다.

글을 올린 공무원은 "비가 쏟아지는데도 고지서를 돌리러 나가야 한다. 우편 송달료가 고지서 전달 출장비보다 적게 드는데 왜 아직도 이런 비능률적인 제도를 고집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김수연 서구청 직협 사무국장(7급)은 "공무원 사회의 제도적 모순은 공무원이 가장 잘 알 수 있다"며 "직협을 통해 현장에서 실무를 책임지는 하위 공무원들의 힘을 모으고 작은 것부터 하나 둘씩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구청 직협은 이런 제도 개선의 출발점으로 지난 5일 6급 이하 520명 전체 회원들을 대상으로 16개 실·과, 17개 동사무소, 37개 담당별로 근무 선호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인사이동 없이 몇년째 한 부서에서만 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 선호도가 낮은 실·과, 동사무소, 담당에서 일하는 공무원에겐 수당, 승진 점수 등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는 여론에 따른 것이다.

직협은 또 무려 85개에 이르는 설문 문항을 통해 간부 공무원의 부서운영비 적정 사용 여부, 간부공무원의 부패·비리사례,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각종 사조직, 동호회, 특정인물에 대한 여론조사를 함께 실시했다.

모 구청 한 공무원은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파격적인 설문조사였다"며 "직협이 민선3기체제에 개혁의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하지만 공무원 사회의 이런 변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적잖다.

자치단체장들은 직협이 인사 문제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것은 단체장의 고유 권한에 대한 침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고 지방의회 의원들도 단체장의 독선을 견제하고 행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은 의회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박광국 영남대 교수(정치행정학부)는 권력의 분산, 견제 측면에서 볼때 직협의 활성화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전제한 뒤 "하지만 직협의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조직의 목표와 직협의 목표가 대립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며 "두가지 목표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운영의 묘를 살리는 게 당면 과제"라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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