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벼량끝 한우산업-(3)유통구조의 왜곡

"이대로 가면 앞으로 도축장에서 한우 대신에 수입 생우나 젖소, 교잡우만 봐야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국민들의 의식 전환과 상도덕이 회복되지 않는 한 한우는 이제 끝장입니다".

경북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 농협중앙회 축산물 고령 공판장에 파견 근무중인 경북도 가축위생시험소 윤문조(41) 검사관과 20년 이상의 한우쇠고기 유통경험을 가진 경북 군위군 군위읍 (주)동아LPC의 한정수(45) 영업부장의 한탄이다.

지난 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의 험난한 파고속에서 정부는 쇠고기시장 개방에 대비, 수입쇠고기에 맞서 한우를 살리려고 갖가지 정책을 내놓고 축산분야에 92년부터 98년까지 4조원을 투입하는 계획을 세웠다. 한우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1조1천662억원으로 기반을 다질 생각이었다. 그뒤 한우대책이 잇따랐다.

이런 노력으로 지난 92년이후 외형적인 성과는 적잖았다. 가축시장의 현대화로 200개가 넘었던 가축시장이 100개로정리되고 168개가 난립했던 도축장도 114개로 줄었다.

또 도축·가공·판매를 일괄처리하는 선진형 축산물종합처리장(LPC)도 전국 9곳에 설치, 가동중이다. 냉동육에서 냉장육 유통으로 바뀌어 자리를 잡았다.그러나 이런 외형적인 결과에도 250만~260만마리(2001년 기준)의 한우 사육을 유지하겠다는 정부방침과는 달리 지금 한우는 140만마리로 줄었다.

34만으로 예상했던 한우농가는 24만으로, 30% 예정의 한우 자급률은 20%로 하락했다. 이런 하락행진이 멈춰지지 않는 것은 왜 일까."한우산업의 위기는 바로 왜곡된 유통구조에다 국민들의 낮은 의식구조가 큰 역할을 했다는데 의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올해 3년째 쇠고기 중매인생활에 접어든 박원모(33·경북 고령군 다산면)씨는 말했다.

박씨뿐 아니다. "값싼 수입 쇠고기의 만성적 둔갑판매 행태와 상도덕 상실"이라는데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300마리의 한우를 키우는 이재학(64·달성군 하빈면) 대구·경북 한우조합장은 "수입쇠고기를 한우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잘못된 유통구조가 한우산업을 무너뜨리는 원인의 첫째"라고 잘라 말했다.

축산유통연구소 정규성(56)소장은 "그동안 전근대적이던 쇠고기 유통시설과 한우고기의 유통환경이 좋아졌다"며 "그러나 소비자에게 공급하는식당에서의 수입쇠고기 한우둔갑 판매는 여전히 가장 큰 문제"라고 한우산업의 위축과 위기 원인을 진단했다.

정 소장은 또 "일본에서는 우리와 달리 일본 고유의 소인 와규(和牛)의 고급육을 파는 곳과 수입고기를 사용하는 식당을 구분, 가격차이를두며 소비자들이 알고 식당을 찾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고 강조했다.

수입쇠고기의 홍수에도 불구, 일반 식당에서 당당하게 수입쇠고기를 사용한다고 소비자에게 알 권리를 제공하는 곳은 찾아 보기 힘든 것.이들은 원산지 표시 의무가 없어 굳이 수입쇠고기임을 밝히지 않는다.

정부도 통상마찰을 이유로 전국 한우농가들의 줄기찬 요구에도 귀를 막았고 보건복지부 역시 식당의 원산지표시제 도입을 꺼리고 있다.한편 원산지 표시 의무화에도 불구, 쇠고기 판매업소의 한우둔갑 판매도 여전해 올들어 7월까지 대구·경북에서만 264건의 원산지 허위표시행위가 적발됐고 71건이 육류였다.

또 육류 적발 건수의 절반이 넘는 37건이 수입육의 한우 둔갑으로 나타나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벌금형을받았다고 품질관리원 경북지원의 유통지도과 황충식씨는 말했다.

결국 원산지 표시의무가 없는 식당에서의 둔갑 가능성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실제 식당에서 수입고기를 내놓아 실랑이를벌인 적도 적잖다고 올해 8년째 둔갑판매 단속업무를 해온 경북농관원 최청순 원산지단속 담당은 말했다.

자신은 식당에서 쇠고기를 가급적 사먹지 않는다는 박원모씨는 "식당의 둔갑이 문제이며 수입고기를 쓴다고 소비자들에게 알려주는 식당은없을 것"이라 단언했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먹는 고기에 대한 선택권을 빼앗기고 한우인지 또는 수입고기나 젖소고기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고령공판장에서 도축쇠고기 등급판정 업무를 보는 축산물등급판정소 대구·경북지소 이동원(38)과장은 "식당에서 수입고기나 젖소고기를 한우로둔갑시키거나 섞어 팔면 전문가들도 구분이 힘들 때가 많아 식당에서의 속임수는 가려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더구나 미래의 한우 소비층인 어린 세대의 입맛을 수입고기에 맞게 길들이는 치명적 속임수 행태들도 이뤄져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12일 대구지검에 붙잡힌 한 육류급식업체 대표는 대구지역 10여개 초·중학교에 급식용 고기를 공급하면서 수입쇠고기를 한우고기에 섞어공급, 18개월간 1억2천만원의 부당이익을 챙긴 사실이 적발됐다. 한 관계자는 "학교납품 쇠고기는 90% 이상이 수입고기라는 말이 있고 한우로는 납품단가가 맞지 않다"고 전했다.

농림부 식품산업과 이원선씨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인 듯 "식당 단계에서의 둔갑판매는 정부가 나서서 규제하기가 어렵고 업주들의 양심과 도덕에 맡기는 외 다른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쇠고기 원산지를 표시하면 음식물에 들어 가는 모든 재료의 원산지를 표시하도록 해야하는 문제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란 것이 이씨의 궁색한 설명이다.

"전국 도축장이 한우 대신 수입생우나 젖소 등과 같은 소들로 가득찰 날이 진짜 오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는 윤문조씨의 이야기가 요즘의 우리 한우 형편을 보면 전혀 얼토당토않은 말은 아닌 것 같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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