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베트남 10,000일의 전쟁

어린 시절 베트남전에 파견됐다 돌아온 국군용사는 우리의 영웅이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열대우림속에서 베트콩과 처절한 전쟁을 벌인 그들의 검게 탄 모습에서 민주주의의 참 가치를 보았고, 북한과 대치하고 있던 우리가 우리의 소중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 지를 보았다.

1975년 마침내 사이공이 함락됐을 때, 민주주의를 수호하던 한 나라가 사라짐에 경악했고, 공산주의에 대한 더욱 더 강한 경계심과철통방비를 다짐하기도 했다.이러한 사실이 모두 허구였다는 것을 깨닫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금제되고 있었지만 70년대 후반부터 여러 통로를 통해 베트남 전에 대한 비판이 흘러나왔고, 미국에서는 '허망한 전쟁' '이길 수 없었던 전쟁'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베트남 전쟁은 민주주의 대 공산주의의 전쟁이 아니라 민족주의 대 제국주의의 전쟁이고, 우리가 베트콩이라고 불렀던 잔학한 적들은 '자유'를 위해 싸웠으며, 호지명(호치민)이라는 베트콩의 괴수는 평생을 청렴과 결백으로 프랑스·미국의 제국주의에 저항한 철저한 민족주의자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통제된 정보, 왜곡된 교육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잘 보여주었다.

캐나다 방송사 극동특파원으로 1959년부터 월남이 패망할 때까지, 그리고 패망후에도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베트남을 방문했던마이클 매클리어의 '베트남 10000일의 전쟁'은 우리에게 왜곡된 전쟁으로 남아있는 '베트남 전쟁 30년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책은 2차대전 끝무렵인 1945년 4월30일, 베트남과 국경인 중국의 윈난성 근처 시골마을 찻집에서 미군 OSS(전략사무국) 대원인 패티 소령이 호치민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시 호치민은 패티 소령에게 '새로운 베트남을 건설하는 데 공산주의는 타당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며 미국에 바라는 것은 도덕적 지원 외에 아무 것도 없다'며 베트남의 독립을 애절하게 호소했다. 그러나 당시 베트남을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와새로운 지배자가 되고 싶어 했던 미국은 이 호소를 묵살했고, 긴 전쟁끝에 이 만남으로부터 꼭 30년이 지난 1975년 4월30일 베트남은 독립을 쟁취했다.

이에 앞선 1969년 지도자 호치민은 하노이에서 10여평의 초라한 집 한채와 책 20여권, 타이프라이터 한 대, 후배들에게 남긴 '단결'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미군의 폭격을 보면서 '폭격으로 생긴 웅덩이에 물이 고이면 메기가 자라고 우리는 그 메기를 요리해 먹으면서 독립을 위해 투쟁할 것'이라며 '메기조림'을 가장 좋아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은 베트남전을 기록한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미국으로서는 '필패의 전쟁', 베트남 민족으로서는 '필승의 전쟁'일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현장 답사와 관련자 증언, 각종 관련 문건 등을 통해 보여주고 세계 열강들의 무력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던 베트남 민족의 꿋꿋한 기개와 독립에대한 의지를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마이클 매클리어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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