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가 프랑스의 승리를 이끌었다?"모든 농부들에게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행위에는 신성함이 깃들어있다. 프랑스인들에게는 포도재배와 수확에 깃든 정서가 바로 그렇다. 새책 '와인전쟁(Wine and War)'(돈 클래드스트럽, 페티 클래드스트럽/한길사)은 세계2차대전을 무대로 와인을 둘러싼 나치와 프랑스인들의 전쟁이야기다.
그러나 단지 포도주를 다루거나 전쟁만 다룬 것은 아니다. 조국과 포도주를 위해 싸운 프랑스인들, 포도에 대한 사랑과 헌신적인 삶의 방식으로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어둡고 어려웠던 시절을 살아남아 승리를 거둔 '사람들'에 관한 문화인류학적인 고증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나르시스적인 표현이지만 이런 말이 있다. "진정한 프랑스인이 갖추어야 할 속성은?". 프랑스에서 태어난 것, 자유를 옹호하는 것, 프랑스어를 말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훌륭한 포도주를 알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
'와인전쟁'은 소설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다큐멘터리적 기법이 눈에 띈다. 2차대전의 연대기적 서술에 따라 삽입된 2차대전을 경험한 포도주 상인들과 자손들의 증언이 사실성을 더한다.
"독일군이 포도주를 주문하면 가장 흉작이었던 1939년산만을 보냈지. 협박에 못이겨 낮은 값에 파느니 코르크가 없다든가, 병이 없다든가 핑계를 댔어".
책을 읽다보면 포도주는 철저하게 역사의 숨은 '실력자'임을 알게 된다. 2차대전이 끝나고 발견된 히틀러의 은신처, 일명 '독수리 둥지'에는 프랑스에서 약탈해 간 세계 최고의 포도주 수십만병이 발견됐다. 히틀러 자신이 포도주를 '맛이 간 식초'쯤으로 폄하했지만, 포도주에 '음료수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인정한 대목이다.
'마키'(프랑스 레지스탕스의 별칭)들이 전쟁터에서 포도주 한병에 용기를 얻었던 사실, 퍼붓는 폭탄속에서 포도를 수확하기 위해 달려가는 농부들, 포도주통에 레지스탕스와 무기를 숨기고 독일군의 검문을 피했던 일들. 포도주는 중심으로 전개된 프랑스인의 삶은 저항의 역사이며, 프랑스 혁명 정신이 자리잡고 있다.
전쟁이 시작될 때 신이 포도주 생산에 흉작을 가져다주고, 전쟁이 끝날 때 풍작을 가져다준다는 프랑스인들의 믿음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2차대전이 시작된 1939년은 엄청난 흉작이었고, 승리의 해인 1945년은 역사상 최고의 해였으니까.
저자의 표현대로 '와인전쟁'은 "숨겨두려했던 프랑스 역사의 중요한 시기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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