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해 가천마을-층층이 다랑논 안개 낀 옥빛 바다 한폭의 수채화로

집중호우로 본격 휴가철이 떠내려 가는가 싶더니 이내 8월 중순이다. 휴가를 미뤘다면 늦은 휴가지로, 아니면 들뜬 여름 분위기를 조용히 정리하는 곳으로 남해도를 찾아보자.

금산 보리암과 상주해수욕장으로 알려진 남해는 피서지로도, 조용한 가족여행지로도 어울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해는 한나절 나들이코스로는 아깝다. 며칠씩 쉬며 묵고 가야 제대로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섬 끝자락 어촌의 비경

산허리를 휘감은 꼬불꼬불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구석구석 아름다운 어촌 마을들과 비경들이 숨겨져 있다. 그 중에서도 남해의 섬 끝에 자리잡은 가천마을 다랑이 논(비탈진 곳에 층층으로 된 좁고 작은 논)은 이곳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풍광을 뽐낸다.

가천마을은 설흘산(485m)에서부터 푸른파도가 넘실대는 해안까지 급경사로 내리뻗은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바윗돌 해안은 배의 접안을 거부한다. 바닷가에 접해 있으면서도 배 한척 없는 마을. 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산비탈을 깎아내고 석축을 쌓아 계단식 논을 만들었다.

산꼭대기에서부터 바닷가까지 100여 계단 다랑이 논이 층층이 펼쳐져 있다. 농토를 한 뼘이라도 더 넓히기 위해 석축 윗부분이 튀어나오게 만든 것도 이색적이다. 다랑이 논 하나마다 고된 삶이 배어 있다. 저절로 숙연해진다.

하지만 이런 숙연함만 아니라면 탄성을 지를 만하다. 온종일 비가 내렸던 지난 12일. 가천마을은 안개 속에 언뜻언뜻 보이는 다랑이 논의 굴곡과 옥빛 바다, 안개가 절묘하게 어울려 한폭의 수채화처럼 다가왔다.

◈아직도 소·쟁기로 농사

"마을 양쪽으로 내가 흘러 큰 가뭄이 아니면 물 걱정은 없어요". 마을 이장 권정도(56)씨는 그래도 이곳 천수답은 마늘과 벼를 번갈아 심는 2모작이라고 자랑한다.

제각각 뻗어나간 논길을 따라 가려면 트랙터는 꿈도 못꾼다. 소와 쟁기가 유일한 도구. 덕분에 모내기철이 되면 전국에서 사진꾼들이 몰려든다. 서마지기가 넘는 논도 있지만 삿갓배미(삿갓을 놓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논이라는 뜻)가 수두룩해 경운기도 소용없다.

가천마을은 다랑이 논으로 알려졌지만 남자와 여자를 상징하는 암수바위로도 유명하다. 바위의 크기는 수바위 높이 5.8m, 둘레 2.5m, 암바위 높이 3.9m, 둘레 2.3m의 선돌로 수바위는 남성의 성기 모양이며, 암바위는 흡사 아기를 밴 여인의 모습이다. 주민들은 이 바위를 영험한 미륵으로 여긴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가볼 만한 곳

△죽방렴=삼동면과 창선면을 잇는 창선대교에 올라서면 다리 양쪽으로 긴 참나무 말목을 갯벌에 촘촘히 박아 주렴처럼 엮은 것을 볼 수 있다. 힘찬 물살을 향해 팔을 벌린 채 고기를 유인하는 죽방렴이다.

죽방렴은 가장 원시적인 어업도구이다. 물고기들이 빠른 물살에 밀려 들어가 원통형의 대나무발 속에 모여든다. 이곳에는 모두 23통의 죽방렴이 남아 있다. 죽방렴을 배경으로 한 이곳 일몰은 사람들의 넋을 빼놓는다.

△남면 해안도로=남해대교를 지나 1024번 지방도를 따라 가면 임진성을 지나 평산고개가 나타난다. 평산고개를 넘어 유구마을에 접어들면서부터 남면해안도로의 아름다움이 시작된다.

물미(물건∼미조) 해안도로와 함께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중 하나다. 가을이 지나면 감성돔 낚시차량이 꼬리를 물고 서 있을 정도로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남면 해안도로의 아름다움은 월포해수욕장까지 이어진다.

▨숙박업소

가천마을은 요즘 관광촌으로 탈바꿈했다. 작년 농촌진흥청의 '전통테마마을'로 지정돼 15가구에서 민박손님들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올 4월 민박을 유치한 이래 지금까지 600여명이 다녀갔다. 1박3식 어른 3만원, 어린이 2만5천원. 055)862-7996.

가천마을 넘어 남면 해안도로를 달리다보면 군에서 운영하는 가족휴양촌이 나온다. 가족휴양촌에서 바라보는 앵강만의 풍경도 감탄을 쏟아낸다. 7평짜리 통나무집 10동이 있다. 7, 8월 성수기 4만원, 비수기 3만원. 055)863-0548.

▨맛집

미조항 수협공판장 옆 공주식당의 갈치회무침이 별미다. 막걸리식초를 3개월 숙성시켜 만든 초장소스로 무쳐낸다. 매콤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 한접시 3만원, 2만원. 갈치구이·조림은 한 냄비당 1만5천원. 055)867-6728.

▨가는 길

대구에서 구마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를 거쳐 하동IC에서 빠져 남해대교를 건넌다. 하동IC에서 남해대교까지는 20여㎞. 진교IC에서 빠져 남해대교를 건너는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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