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원산을 거쳐 강원도의 시중 호반까지 오는데는 3시간채 못 걸렸다. 평양에서 251㎞다. 시중호는 북한의 호수 관광의 명소로 손꼽는 곳이다. 내금강으로 가기 위해 이곳에서 보통 이틀 밤을 지낸다. 떠나기 전과 내금강 관광을 마치고 평양으로 가기 전 각각 하루 밤을 이곳에서 묵는다.
내금강에 숙박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로 보였다. 시중호는 3개동의 시설을 통해 침실 20개를 비롯 식당 및 오락 시설을 갖추고 있다. 탁 트인 호반을 배경으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시중호는 휴양지로 손색없는 곳이나 관광객을 맞이 하는 데는 그 시설이 빈약해 보였다.
호반의 진흙 등을 이용한 감탕치료소, 물리치료실, 안마실까지 갖추고 있으나 관광객의 구미를 당기기에는 그 시설이 노후할뿐더러 오후8시이후면 정전제를 실시, 그 시설마저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다.
'호수 관광의 최적지'라는 안내원의 설명이 제대로 먹혀들리 만무하다. 이 곳을 찾는 고객도 거의 없었다. 이틀 밤을 이곳에서 보냈으나 손님은 2, 3명밖에 없었다.
"이같은 빈약한 시설로 외국 관광객을 맞이하는 것은 무리이며 거기다 정전마저 되니 누가 이곳을 찾겠느냐"는 나의 반문에 안내원은 "북한의 관광개발을 위한 해외 동포들의 자본 참여가 절실하다"고만 말했다.
손님은 거의 없는데 이곳에 상주하는 직원은 요리사, 접대원, 안마사를 비롯 7, 8명이나 되어 보였다. 여자 안마사는 원산의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학도인 것이 이채로웠다. 남편은 원산에서 외과 의사로 일하며 자신은 이곳에 상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중호에서 통천을 거쳐 북측 강원도의 내금강에 도착하는 데는 불과 1시간도 안 걸렸다. 내금강 초입에 이르는 길은 잘 닦여져 있었다.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외금강, 내금강이 남쪽 동포들에게 개방된 이후 내금강 개발에 박차를 가해 지난해 10월 시멘트로 포장된 새 길이 닦여졌다는 것.
현재 내금강 산자락에 호텔 시설을 갖추기로 하고 현재 추진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새 도로가 닦여지기 전까지만 해도 내금강을 찾는 이는 거의 없었을 것으로 여겨졌다.
필자가 탄 승합차가 내금강 초입에 이를때까지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산자락에는 '협동농장'등이 눈에 띄었고 가끔 부녀자들이 머리에 무엇인가를 이고 지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금강 산자락 여인네들은 남남북녀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피부가 맑고 고와 보였다. 산천이 변하지 않고 계곡의 물이 한 여름인데도 시리고 차니 여인의 피부가 고울 수밖에….
내금강은 행정구역상 강원도 금강, 고성, 통천군에 잇따라 있다. 금강산의 3개 명소 중 해금강, 외금강은 남한 쪽에 개방되었고 현재 북측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내금강이 유일하다. 산자락을 벗어나자 차창을 통해 내금강의 봉우리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오락가락 하는 빗줄기, 운무(雲霧)와 함께 그 높은 봉우리들도 보였다
자취를 감추는 등 나그네에게 심술을 부렸다. 보이는 것은 형형색색의 봉우리, 바다같은 수풀, 기암괴석 뿐이었다. 입에서 "아…"하는 소리와 함께 카메라에 절로 손길이 갔다. 금강산 안내만 10여년째 하고 있다는 30대 후반의 금강산 강사(講師)는 바위, 봉우리에 얽힌 전설을 무성 영화의 변사처럼 열변을 토했으나 그 절경 앞에 말이 무색해버려진 느낌이었다.
비로봉 정상에 오르기로 하고 그 초입인 표훈사에서 일단 쉬어가기로 했다. 법당에서 주지 스님의 반야심경 독경 아래 예불을 드린 후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스님은 "절을 찾는 신도들은 그리 많지 않다. 사월 초파일이면 연등을 걸고 불공을 드린다. 지난해 남측 스님들과 합동 예불을 드린 것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느닷없이 빗줄기가 더 세졌다. 내금강 초입에 들어설 때부터 오락가락하던 빗발이 큰 비를 몰고 왔다. 더 이상 오르는 것은 무리였다. 비에 흠뻑 젖은 몸이고 한 여름의 날씨에도 오싹한 추위를 느꼈다. 삼불암 다리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마저 더 거세졌다.
"좀 쉬었다 올라가자"는 나의 재촉에 안내원은 손을 내저었다. 되돌아오는 길은 흙탕길이 되어 버렸다. 빗줄기는 좀처럼 그치지 않고 왔다갔다 했다. 운동화는 진흙 투성이인 채 한 발자국 걷는 것조차 힘들어 차를 세워둔 곳까지 오는데 근 2시간이나 걸렸다.
계곡에서 운동화와 흙으로 범벅이 된 손발을 씻었다. 물이 차고 시려 대충 씻은 뒤 오후 3시께 뒤늦은 도시락으로 허기를 채웠다. 물이 맑아 잔챙이 고기들이 이리저리 휘몰아 다녔다. 그러나 그 금강 계곡에는 한 여름인데도 사람의 그림자마저 찾아볼 수 없었다.
통일의 그 날이 오면 내금강은 7천만 한민족의 명소가 되리라 다짐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금강산하는 길손의 마음을 모르는 듯 도시 말이 없었다.
박병태〈재호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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