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네얼굴에 주문을 걸어봐

"엄마, 난 좀 못생긴 것 같아, 코도 납작하고...".

10살짜리 딸아이의 갑작스런 하소연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눈치를 보니 아직 심각한 수준은 아닌 듯 하다. 얼마나 귀여운 얼굴인데 그러냐며 호들갑으로 얼버무렸다. 그러나 머지않아 우리 딸 또한 외모와의 혈투를 시작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 같아 한동안 마음이 복잡했다.

언젠가 되물어올 딸아이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외모보다는 내면이 중요하다는 답변을 떠올려 봤다.

40대의 나에게도 한마디로 시대착오라고 느껴진다. 한 조사결과에서 우리나라 13~43세 여성의 68%가 외모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응답했다. 분석에 의하면 우리 사회의 외모에 대한 높은 관심이 미국사회의 루키즘(Lookism:외모 지상주의)을 능가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이미 미국의 많은 잡지들이 성형공화국 한국의 실상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을 정도 아닌가. 그렇다고 아무 거리낌없이 성형수술해줄 테니 걱정 말라고 위로할 수도 없는 일이라 고민이 크다.

획일적인 美 기준

이런 경우 선배들은 어떻게 했는가 조언을 구했다. "유식한 척하는 부모들이 더 문제야. 온 사회가 외모 때문에 난리인데,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고 해 봐. 아이만 벼랑 밖으로 내모는 셈이지". 나무람으로 시작된 선배의 충고는 자녀가 어려서부터 자신의외모에 대해 자존감을 갖도록 부모가 적극 격려해주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외모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지 말고, 오히려 적극적으로딸의 외모를 칭찬해라, 자신의 외모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면 박경림처럼 외모지상의 연예계에서도 군계일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딸아이가 자신의 코가 납작하다고 하소연하기 전에 '앙증맞게 자그마하고 귀여운 코'라고 주문을 외듯 속삭여 줘야 했음을 깨달았다.그래도 선배는 미덥지 않은지 하루에 3번씩 구체적으로 딸의 외모를 칭찬하라는 지침까지 만들어 주었다.

생각해보니 외모와 관련해 얼마전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민간기업의 여성간부인 한 친구가 여성의 외모와 생산성이 비례하는것 같다는 발언을 했다. 미모의 여성이 고객이나 거래처와의 관계가 원만해 생산성이 높은데 반해 그렇지 못한 여성은 인간관계에서 소소한 갈등이 많다는 거였다.

왜 그런가를 분석하다 보니 미모의 수준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밝은 인상과 긍정적인 태도, 즉 외모에 대한 자긍심이생산성과 유의한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의외로 예쁜 여성인데도 자신의 외모에 불만이 많은 여성들이 적지 않고 이들에게서는 기대된 결과가 발견되지 않음에 비해, 수수하지만 밝은 모습의 여성에게서 높은 생산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객관적인 외모와 외모에대한 자긍심이 일치하는 것이 아니며, 외모 자체보다도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훨씬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인간의 '다름' 포용 못해

그렇다고 보면 외모중시 사회의 문제는 외모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고 미모수준은 상당히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외모에 대한 부정적인 자기인식은 오히려 확산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할 듯 싶다.

인간의 '다름'을 포용할 줄 몰라 미에 대한 기준에 있어서도 획일적인 우리 사회. 여기에 덧붙여진 뷰티산업의 팽창이 만들어내는 외모에 대한 '사회적 압박'은 예쁜 얼굴·날씬한 몸매에 대한 갈증을 구조화시킴으로써 외모에 대한 자긍심 형성을 끊임없이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성형을 넘어 김희선이나 니콜 키드먼 형으로의 '원초적 복제'까지 길을 열어 주고 있다. 외모지상주의의 끝이 어디일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이쯤에서 이에 대한 구조적 대책 마련을 걱정하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사과나무 한 그루 심듯 내가 일상에서 실천할 일은 없는가 둘러본다.

책을 읽는 딸의 모습이 보인다. 그래, 우선 주변의 딸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칭찬하는 일부터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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