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 되면 각종 공약이 쏟아져 나온다. 선거에서 당선되었을 경우 공약한 내용이 임기내에 이루어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것은 차치하고 우선 그 공약이 국민의 관심을 끌어서 표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면 예외없이 공약의 대상으로 나열된다.
최근의 국가차원의 공약에는 여러가지 개혁사업이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행정조직의 개편, 경제구조의 개혁, 금융시스템의 개혁, 교육개혁 등 매우 다양하다. 그리하여 이러한 개혁을 통해서 국가경쟁력을 높인다고도 하고 정직한 사람이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 사회를 건설한다고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약을 묶어서 거창한 지표로 포장을 한다. 예를 들어 역사를 바로 세운다고도 하고 제2의 건국을 한다고도 한다.이와 같이 미사여구로 수식된 공약의 겉모습만 바라보고 있으면 다가오는 미래는 모두 장밋빛이다. 국민 모두가 지복의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의 세계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발표되는 공약은 그 화려한 외표에도 불구하고 실제 내면을 살펴보면 문제점이 많고 바람직스럽지 못한 의도가 담겨져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러한 예를 몇가지 들어보자.
첫째로 입후보자가 제시하는 공약항목에는 대체로 전임자가 공약으로 제시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은 가능한 제외하거나 대상에 포함시킬 경우에도 그 우선순위를 뒤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전임자가 추진했던 시책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 상과를 평가절하하려는 경향이 있는데다 전임자가 추진했던 시책을 후임자가 훌륭하게 마무리지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전임자의 업적으로 기록될 확률이 높다는데서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이다.반대로 그 시책이 실패로 끝나면 송두리째 전임자의 책임으로 돌려버린다.
둘째로 공약에는 가능하면 전임자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과거에는 추진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책을 드러내려고 한다. 새로운 것, 최초로 시작되는 것은 뉴스의 각광을 받기 쉽고 따라서 국민들의 관심을 끌게 마련이다.
그 내용이 실질적으로 과거의 것과 별로 차이가 없는데도 새롭고 다른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그 시책의 명칭 앞에 '신'이나 '새'라는접두어를 흔히 붙인다.
그 새로운 것이 헌것이 되어 곧 사라질 운명에 놓여질 수도 있는데 굳이 그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그런데 검증되지 않은 신규시책은 언제나 위험부담이 따르고 시행착오를 범하기 쉽다.
신규시책의 당위성의 설명에는 문제점을 절제되고 화려한 장점만 부각시켜 놓기 마련이다. 옛날 사람들이 과거의 경험을 소중히 여겨 그 교훈에 충실했던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셋째로 사업의 성과가 언제 나타날지 막연하거나 오랜 훗날에 나타날 수 있는 시책은 공약대상 시책에서 기피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보자. 홍수로 인하여 큰 재해를 당했을 경우에는 항구적인 재해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야단법석이다. 그러나 재해예방대책사업을 공약사업으로 채택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홍수예방사업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가 그 후 홍수상태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투자는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10년 후에 닥쳐올 물부족현상에 대처하기 위하여 빨리 댐을 건설하자고 하거나 100년 후의 목재수요를 위하여 대대적인 경제조림을 하자고 공약하는 정치가는 없다. 아마 그러한 공약의 제시를 고집하다가는 십중팔구 바보취급을 당하게 될 것이다.국가의 사업선택의 우선순위와 관련된 명언이 하나 있다.
"일리(一利)를 일으키는 것은 일해(一害)를 제거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는 말이다.즉 "이익이 되는 것을 한가지 새로이 시작하는 것보다 종래부터 해가 되어온 것을 한가지 제거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중국의 원나라 창업중신이었던 야율초재(耶律楚材)가 남긴 말이다.
오늘날 정치인은 한가지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는 그렇게도 정열을 바치는데 하나의 해를 제거하는데는 너무도 소홀하다. 겉만 화려한 정치표어는 나열되면 될수록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로 퍼져나가고 국민의 가슴에는 피로감만 쌓일 뿐인다.
이제 국민들은 정치인의 공약중 어디에 허가 있고 어디에 실이 있는지 알만큼 알고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의사표시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백히 알게 되었다.
이상희 전대구시장.영광학원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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