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목공예가 차정보씨

눌러쓴 벙거지 아래로 길게 기른 콧수염이 인상적인 목공예가 차정보(44)씨는 번거로운 도회지를 떠나 10년째 경남 창녕 화왕산 뒤편 기슭에서 산다.

스스로를 '목수'라고 말하는 그는 그냥 나무가 좋아 다니던 대학도 1년여만에 접고 이 길로 뛰어들었다. 경남 창원이 고향인 그는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남달랐고, 왠지 나무만 보면 기분이 좋아 평생 나무를 만지며 사는 길을 선택했다.

목수야말로 평생동안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벽돌 찍어내듯 규격화된 것을 싫어하는 그의 천성때문이기도 하다.

차(茶) 공예품만 고집

독학으로 나무를 다듬는 기술을 익힌 그는 20년 넘게 차(茶)와 관련된 목공예 작품만 만들고 있다. 학창시절 우연히 절에서 전통차 공양을 한후 차를 가까이 하면서 자연스레 그의 작품세계도 차를 떼어놓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다기상이나 차상 등 제각각 개성이 넘치는 목공예 작품 하나하나에 차씨는 심혈을 기울인다.

공들인 부분에 비해 '별로 남지도 않는 장사'지만 그는 나무를 깎아 다듬고 문지르는 일에 여념이 없다. 남들은 어렵다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목공예를 붙들고 씨름하면서 지금까지 전국 각지에서 네 차례의 개인전도 열었다. 지난 96년 대구개인전을 통해 지역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그는 작품 팔아 살림 늘 일도 없지만 부지런히 나무를 매만지며 쓰기 좋고 정교한 차도구만을 고집하고 있다.

공방엔 작품 안내놔

그는 흔한 공방에도 작품을 내놓지 않는다. 사람 눈에 금방 뜨일 얄팍한 짓은 작가의 양심상 도저히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또 공방이 요구하는 것과 자신의 작업성향이 다르기도 하지만 매번 다른 작품을 내놓고 싶은 작가의 고집때문에 고객이 주문하는대로 만들어주는 일에 더욱 신명을 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주문한 사람의 취향과 생활공간 여건을 면밀히 따져본 후 작품을 구상, 정성들여 만들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린다. 돈보다는 아름다움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의 완성된 차도구에 작가 손이 50% 들었다면 사용하는 사람의 손도 절반에 이른다"고 말한다. 작품은 작가와 고객을 연결시켜주는 매개물이기에 그는 목수의 마음으로 사용해달라고 고객에게 늘 당부한다.

미술을 공부하는 고교 1년짜리 아들녀석 공부때문에 대구와 창녕 옥천의 작업실을 오가는 그는 작업실 옆에 '다천산방'이라는 전통찻집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마음맞는 친구들과 어울러 지은 이 찻집은 대구, 부산,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소문을 듣고 물어물어 찾아오는 명소다.

좋은 물에다 질 좋은 우리차와 중국차를 달여 내놓기 때문에 한번 다천산방 차를 마셔본 손님이라면 천리를 마다않고 한결같이 이 곳을 찾는다. 좋은 차와 손님을 식구처럼 대하는 후한 인심, 사람좋은 차정보씨가 있기에 다천산방은 한적하지만 늘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는 공간이다.

지난 5월부터 그는 대구에 또 하나의 다천산방을 꾸미고 있다. 창녕 다천산방이 자연속에 숨은 공간이라면 오는 9월초 문을 열 대구 다천산방은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일상 가까이서 서로 정을 낼 수 있는 차 공간이라고. 멀리 창녕까지 차 마시러 찾아오는 사람들의 불편을 덜어주려는 그의 배려이기도 하다.

수성구 만촌2동 교수촌의 대지 100평 남짓한 주택을 사들여 집을 헐어내고 목수답게 직접 망치를 들고 집짓기에 열심이다. 후배, 제자들의 손을 빌려 함께 땀을 흘리고 있지만 8월 들어 계속되는 비로 어려움도 많다.

난생 처음 집 짓는 일에 겁없이 덤벼든 탓에 망치 버리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많았지만 한번 빼 든 칼이라 어떻게 해서든 마무리하려고 고심중이다. 목수가 하는 일이라 어련할까.

무엇이든 정성을 들이는 차씨의 성격 탓에 제법 근사한 공간이 조금씩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는 대구 차방 건축때문에 당초 연내 가질 계획이었던 개인전도 내년으로 미뤘다.

사람이 가장 중요

10년 넘게 산골에 틀어박혀 살다보니 세상물정에 어둡지만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역시 사람이더라고 힘줘 말하는 차씨는 욕심부리지 않고 밥만 먹을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일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것으로 족하지 않느냐며 세상에 부러울 것 없다고 말했다. 등걸진 소나무처럼 투박하지만 순박하고 속 깊은 작가 차정보씨의 살아가는 모습에서 외길 목수의 장인정신이 엿보인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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