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순종식씨 일가 '탈북작전'

목선을 타고 귀순한 순종식(70)씨 일가족이 탈북 당시 신고를 막기 위해 목선 기관장 리경성(33)씨를 바다로 유인한 뒤 기관실에 감금한 채 탈북했다고 국내 일부 언론이 보도, 리씨의 신병처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리씨는 군.경과 국정원 등 관계당국 합동신문에서 "나는 북에 부모와 처자식들이 있다. 남조선에 올 이유가 없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해양경찰청은 20일 집단 어선 탈북사건과 관련, 경비정 접근 당시 결박되어 있던 사람은 없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해양경찰청은 지난 18일 오후 6시 20분께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울도 서방 17마일 해상에서 해경 경비정 119정(정장 김재만 경위)이 탈북어선 '대두 8003호'를 발견, 검색할 당시 탈북자 21명 중 묶여 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밝혔다.

정장 김 경위는 "지하 선실에서 탈북자들을 선상으로 올라오게 할 당시 결박돼 있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며 "어선에 선장과 기관장을 남겨 놓고 우리측 해양경찰관 2명이 함께 탑승했으나 기관장으로부터 결박 여부에 관한 얘기를 들은 사람은없다"고 말했다.

순종식씨의 장남이자 이 배의 선장 순룡범(46)씨는 해경 조사에서, 지난 17일 새벽 4시 평북 선천군 홍건도 포구에서 출발할 당시 리씨는 114지도국 소속으로 이 배에서 당직 근무를 서고 있었으며, 자신이 일가족을 데리고 배에 올라타면서 "밤바다를 구경가는데 함께 가자"고 유인해 배에 태웠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리씨는 해경의 검색 과정에서 발견돼 풀려났으나 계속 담배만 피워댈 뿐 말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순씨 일가족 등 탈북자 21명을 조사중인 합동조사반은 이들이 2개월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탈북을 면밀히 준비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남한에는 순씨의 동생인 동식(60), 동례(56.여), 봉식(53), 대식(51)씨가 인천과 충남.대전 등지에서 살고 있으며 순씨의 호적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려진 상황을 종합해 순씨 일가의 탈북과정을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순씨는 부인 김미연(68)씨 친척들이 중국을 자주 오가는 점을 이용, 지난 97년부터 남측 동생들과 연락을 취했다. 탈북 계획을 세우고 난 뒤에도 당 간부 출신인 둘째와 셋째 며느리에게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며 이들을 끝내 탈북 대열에 합류시키지도 않았다.

하지만 삼엄한 해상경비를 뚫고 탈출하기란 쉽지 않았다. 지난 6월에야 순씨의 장남 순룡범씨가 신의주 수산기지 소속의 '대두 8003호'선장이 되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배에는 남한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중국산 흑백 TV가 있었고 바닷길을 안내해줄 위성추적시스템(GPS)도 있었다.

충남 논산이 고향으로 6.25 당시 의용군으로 끌려갔던 아버지로부터 "남에 삼촌들이 살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순씨는 이 흑백TV를 통해 남쪽 사회의 풍요로운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북한 해안경비대의 경비가 토요일 새벽에 가장 소홀한 점을 이용해 17일 새벽 4시쯤 배를 띄웠다.

날이 밝아올 무렵 여기저기서 북한어선들이 보였다.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해 여자와 아이들은 엎드리게 하고 고기를 잡는 척 했다. 약 2시간 만에 공해상으로 벗어난 순씨는 곧장 남하를 시작했다.

정신없이 남쪽으로 내려오던 순씨 주위에 이번엔 중국어선들이 눈에 띄었다. 이때 중국순시선에 붙잡히지 않을까 배를 동쪽으로 돌리기도 했다. 해양경찰청 관계자는 "홍건도 포구에서 울도 서쪽 17마일 영해상까지 시속 7노트의 속력으로 39시간 만에 도착한 것으로 볼 때 최단거리로 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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