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캠퍼스의 '왕언니'들

우리가 지금 '포스트 월드컵 시대'로 가고 있다면, 우리 여성들은 '포스트 페미니즘 시대'를 열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내부의 다양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이제 여성은 '페미니즘'이라는 깃발 아래 '성(性)'이란 단일 기준으로 묶일 수 있는 집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요즘 여성 집단 내부에서는 세대, 학력 수준, 경제적 지위, 결혼 지위 등을 축으로 다양한 분화와이질화가 진행되고 있는 추세다. 이런 변화의 물결 속에서 신세대 여성들은 "여성의 '여(女)'자만 들어도 싫다"니 앞의 말이 설득력을 얻을 만도 하다.

▲그러나 한국 여성의 지금까지의 발전 속도는 과연 어떠했는가. 전체 취업자의 41.6%가 여성일 정도로 양적인 성장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비정규직으로 서비스직이나 판매직 등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행하게도지난해 우리나라 대졸 여성의 인력 활용도는 54.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최하위로 기록되지 않았던가.

▲대학의 여자 졸업생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고시.대학원 진학을 위해 다시 학교로 되돌아와 '왕언니'로 군림, 캠퍼스의 새 풍속을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외환 위기 여파로 취직을 위해 적성도 안 가리고 허겁지겁 사회에 진출했던 1998년 이후(2000년까지)의 졸업생들이 대거 되돌아와 빚고 있는 '또 다른 여파'인 셈이다. 이들의 주요 근거지는 과방.동아리방.도서관 등으로, 어떤 대학의 과방은 아예 이들이 점령해 '실버 타운'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학과 운영이나 후배 지도 등에 적극성을 보여 '왕누나'로 불리기도 하는 이들의 위세는 그야말로 '여풍당당(女風堂堂)'이다.종래에 재학생들 사이에는 두말할 것도 없이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남학생들이 위풍당당(威風堂堂)했다. 그러나 이제 돌아온 여학생들이 그 자리를 밀어내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대학 일부 과의 경우 "전통을 살린다"며 남자 복학생들을 집합시키고, 술자리에서 노래를 시키는 등 '남자 길들이기'도 하고 있단다.

▲'여성들의 치마 길이를 보면 경기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불경기 때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침체되면서 긴 스커트를 선호하지만,경제가 잘 돌아갈 때는 밝은 분위기에 어울리도록 스커트 길이가 짧아진다는 데서 나온 말일 게다.

경제 위기 전까지 우리 입에 오르내리던'압축 성장' '고도 성장'이 다시 부각되면서 여성들의 스커트가 짧아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런 밝은 사회가 무르익으면서 평등과 존엄의 차원을 넘어 우리 경제의 경쟁력과 효율을 위해서도 여성 인력 활용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봐야 할 때가 오지 않았을까.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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