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美 법무부-인권단체 명단공개 공방

미 법무부는 지난해 9.11 테러공격과 관련돼 체포된 1천182명의 명단을 테러 1주년이 다돼가는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이 때문에 미국내 인권단체들과 미 행정부는 날카로운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사법부는 인권단체의 손을 들어 줘 지난 2일 9.11테러이후 이민법 위반으로 구금 중인 사람들의 명단공개를 결정했다. 그러나 사법부는 최근 체포자 명단을 즉각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며 당초 결정을 유예했다.

지방법원 판사 글래디스 케슬러는 최근 정부측 검사에게 항소할 시간을 주면서 종전 판결을 보류했다. 판결 보류는 항소법원이 이 사건을 판결할 때까지 유효하다.

항소법원의 판결은 보통 여러 달이 걸린다. 로버트 맥콜럼 법무차관은 "법무부는 법원의 유예결정을 반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테러 수사에 대한 테러리스트들의 대비책 개발을 막는 한편 신분 공개를 원하지 않는구금자와 구금자의 사적 이익 보호를 위해 법무부가 노력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지난 8월 2일 케슬러 판사는 법무부에 구금자 명단공개 판결을 내렸다. 법무부는 그 명령이 보류되지 않으면 테러조직에게 정부조사에 대처할 능력을 주어 공공안전에 심각한 위해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9.11테러 공격 이후 정부에 대해 일관된 반대 목소리를 내온 미국내 인권 단체들은 정부의 비밀체포 정책에 도전한 법원의이 판결을 환영했다. 부시 행정부와 존 애쉬크로프트 미 법무장관은 테러공격 이후 국가 기밀을 급격하게 늘려왔다. 케슬러 판사의판결은 행정부의 이러한 태도에 일격을 가한 것이다.

애쉬크로프트 장관은 미국내 모든 합법적 수단을 총동원할 계획임을 처음부터 분명히 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약 1200명을 체포해 감옥으로 보내는 데 이민법과 물적 증거를 이용했다. 처음엔 정확한 체포자 수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법무부가구속자 수를 밝히지 못하게 한데다 애쉬크로프트 장관이 그들의 신상을 비밀에 부쳤기 때문이다.

미국법에 따르면 보통 구속자들은 기소되거나 석방돼야 한다. 그들의 신상도 법원에 기록된다. 그러나 이들 구속자들은 기소되지도 않았고 신원확인도 없이 구금돼 있었다. 인권단체와 아랍계 미국인 단체는 이를 '사법의 블랙홀'이라고 부르면서구금자들의 신원확인과 석방을 위해 법정에서 싸웠다.

반면 애쉬크로프트 장관은 미국의 적을 돕고 미국인의 생명을 위협한다며그들의 비판을 일축하고 있다. 그는 "미국인 대 이민자, 시민 대 비시민으로 편가르는 사람들, '잃어버린 자유'라는 환영에사로잡힌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테러리스트들에게 도움을 줄 뿐, 국가적 단결을 해치고 우리의 결단을 무너뜨린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는 알 카에다 조직이 지난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발사건 용의자에 대한 재판을 매우 주목했다고 말한다. 국제 테러조직이 재판을 통해 미국 정보기관의 대응방법을 터득해 그 정보를 역이용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 행정부의 전례 없는 비밀주의를 정당화해왔다.

그러나 케슬러 판사의 구금자 명단공개 판결은 인권운동가들에게 9.11테러 이후 정부권력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희망을 던졌다. 이 사건의 선임 변호사 케이트 마틴은 " 케슬러 판사의 판결에 따라 정부는 몰래 사람들을 체포할 수 없게 되고 법원은정부의 권력남용에 제동을 걸게 됐다"면서 "9.11이란 비극적 사건이 기본권을 제약하는 구실로 사용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법원도 정부의 비밀 구금을 의심쩍게 보았다. 케슬러 판사는 판결문에서 "비밀 체포는 민주 사회에서 매우 불유쾌한 개념이며 자유롭고 공개적인 민주사회의 기본적 가치기준에도 배치되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케슬러 판사는 두 가지 예외를 인정했다. 구금자들이 테러수사의 물적 증거이거나 그들이 신원확인을 원하지 않을 경우 명단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종전 판결을 보류하면서 "법원이 위기의 순간에 정부의 우선권을 이해한다면 정부도합법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법원에 보증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케슬러 판사는 또 정부가 구금자들의 구속장소를 비밀에부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다. 그녀는 "구속에 분노한 사람들이 죄수들을 노릴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9.11테러 조사와 관련 거의 1200명을 공식적으로 구금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추방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구금된 사람은 이민법 위반과 관련 기소된 74명을 포함 적어도 147명에 이르며 정부는 그 명단도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

특히 케슬러 판사의 판결은 쿠바 관타나모 미 해군 기지에 구금된 사람들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미국법원이 600명 이상의관타나모 구금자에 대한 재판권이 없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국사법제도의 보호를 받지못하는 '사법 회색지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법률가 협회(ABA)는 부시 행정부가 미국시민을 '적 전투원'으로 간주, 변호사 접견이나 기소조차 하지 않은 채 구속하고도 정당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협회의 한 변호사는 "행정부가 원한다면 누구나 구속할 수 있다고 대통령이 주장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케슬러 판사의 판결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체포된 사람들은 '미국법의 긴 팔'로도 안을 수 없는 존재라는 미국 정부의 견해를강화하고 있으나 한편으론 미국정부 당국도 매우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조영창기자 cyc1@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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