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동시장 새 변화-'조기퇴직'증가…근본대책 필요

경기회복세가 뚜렷해지면서 실업급여 수급자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실업급여 지급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대구·경북지역 각 고용안정센터에 따르면 실업급여 수급자는 줄어든 반면 총지급액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경기가 좋아지면서 실업상태에 놓인 사람들의 숫자는 전반적으로 줄었지만 월급을 많이 받는 중년이상 관리직에 대한 구조조정은 꾸준히 이뤄져 고액 실업급여 수급자가 늘어난 탓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40대 초반, 이르면 30대 후반부터 이미 조기퇴직을 강요받는 시대. 퇴직후 삶이 재직중삶보다 더 길어질 수 있는 사회. 봉급생활자들은 나이가 무섭다.

▨실태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 3년째 근무하고 있는 서모(30)씨는 얼마전부터 사표를 쓸 생각을 하고 있다.밤 10시 정도는 되어야 퇴근이 가능할 정도로 일이 많은 것도 불만이지만 무엇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서씨는 "40대 초반만 되어도 직장내에서 찬밥신세가 되는 선배들이 많다"며 "밤늦도록 일만 하다가 40대에 덜컥 조직에서 내팽개쳐지느니 한살이라도 젊을 때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전문직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이철희 교수가 최근 내놓은 '한국 고령남성의 경제활동 참가'라는 논문에 따르면 지난 세기를 통해 선진국 노동시장에서 일어난 가장 두드러진 변화 가운데 하나는 고령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급격히 하락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논문은 65세 이상은 물론 65세 이전 영구적으로 노동시장을 떠나는 것으로 정의되는 조기퇴직이 대다수 OECD국가에서크게 확대됐다고 밝혔다. 이 논문은 또 우리나라 역시 나이든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향후 상당히 큰 폭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논문에 의하면 1880년 미국에서는 65세 이상 고령남성의 80%가 일을 했으나 오늘날 같은 연령대 남성의 노동력 참가율은20%를 밑돌고 있으며 영국과 독일의 노년남성 경제활동 참가율도 비슷한 추세를 보이는 등 나이와 노동의 반비례 현상이 두드러지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

한국노동연구원 허재준 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고령화의 전망과 노동시장정책의 방향'이란 논문에서는 2050년 한국 인구의 3분의1이 65세 이상 노인이고 경제활동 인구의 절반 이상이 50세 이상의 고연령층으로 구성돼 일본을 제외하면 OECD국가중 가장 고령화된 인구구조를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대책없는 고령화사회가 예상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기업은 나이가 조금만 들면 고용을 꺼리는 것은 물론 있는 사람도 나가주길 바라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자료를 봐도 많은 고용주들은 채용이나 해고를 할 때 나이를 근거로 차별하는 관행을 계속하고 있으며 한국 고연령자의 고용안정성은OECD평균은 물론, 영국이나 미국 등 노동시장 유연성이 높은 국가들보다도 낮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나라 관리직과 전문·기술직의 임금은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급속히 증가, 30∼34세에 연공급 정도가 임금의 3배까지 증가하기 때문에 기업들로서는 나이 많은 근로자가 달갑지 않다고 분석한다.

반면 근로자들로서는 연금 등 사회보장체제가 미흡해 조기퇴직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지니고 있다. 40세 전후로 퇴직할 경우, 재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해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해보면 경제활동을 했던 기간보다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기간이 몇 배나 더 길어지는 것이다.

더욱이 한 조사를 보면 현재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45세 이상 연령층 가운데 노후생계비 문제에 대해 확실한 계획을 갖고 있는 사람은 12%에 불과하고 은퇴자 가운데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을 조금이라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62%에 머무른다.

▨대책

정부는 지금까지 30세 이하의 청년실업자나 55세 이상의 노령실직자들에게 한정했던 고용장려금 제도를 40대에까지 확대,중장년층으로 확대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조기퇴직시대를 감안한 것이다.

노동부는 중장년층 실직자의 취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내년부터 300인 미만 중소 제조업체가 40세 이상 실직자를 고용하면 1년 동안 고용장려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장려금은 첫 3개월 동안엔 1인당 월 60만원이 지급되고 △다음 3개월 동안 월 40만원 △나머지 6개월 동안 월 20만원씩 모두 420만원이 지원될 계획이라는 것. 국비 재취업 훈련을 3개월 이상 받은 40세 이상 실직자를 고용하는 경우가 대상이며, 연간 1만6천여명의 중장년층 실직자가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부는 고용지원금의 재원으로 고용보험 기금을 이용할 것으로 보이며 이를 위해 올 하반기에 고용보험법 시행령을 개정키로 했다. 정부는 지금까지 고용활성화 방안으로 30세 이하를 대상으로 한 인턴지원금, 5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고령자 재고용장려금, 신규고령자 고용촉진장려금 등의 제도를 실시해 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같은 보조금 정책으로는 조기퇴직시대를 충분히 대비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다양한 정책을 통해 다층보장체계를 확립해야한다는 것이다.

우선 봉급에만 의존하는 직장인들이 직업생활 초년기에 개인연금에 가입, 노후를 미리 대비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권고하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으로서는 퇴직후는 물론 노후대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일정 연령 이후에는 낮은 임금으로 일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되어야 나이든 사람들의 노동시장 재진입이 원활해지며 정년제를 권장하기보다 취업 및 인사관리상의 연령차별을 없애는 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

이에 대해 노동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처럼 사회보장체계가 미흡한 나라에서 연령을 이유로 무차별적인 정리해고가 이뤄지면이들 근로자들은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는 셈"이라며 "나이를 이유로 일하는데 차별을 받는다면 노령화사회에 거꾸로 대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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