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파괴와 도약

오늘날 추상이란 현대 미술의 한 장르라고 얘기 하기에는 너무도 광범위한 하나의 정신이다. 이 정신은 현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꾸준히 이어졌고 존재하고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본성에 의한 추상행위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논리의 대상이 되어 하나의 사조로 정착하게 된 것은 서양의 미술 르네상스의 인본주의가 낳은 일루저니즘(illusionnisme)이라는 우주의 무한함을 시각적으로 포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더욱 과시하는 하나의 양식을 탄생시킨 위대한 업적에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외부 세계의 모습을 실감나게 옮겨놓을 수 있는 인간의 뛰어난 솜씨에 감탄하면서 우리는 그 이전에 회화가 지니고 있던 또 다른 가치들을 잊어 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 잊혀진 가치를 회복하려는 의지가 오늘날 수많은 회화적 모험을 낳게 했다.

즉 회화란 실재처럼 외부세계를 옮겨 놓은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실재'로 존재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외부세계를 옮겨 놓은 사실과 동등한 자격의 '회화적 사실'을 새로운 가치로 받아들이게 했다.

아직도 외부 세계의 환영(illusion)을 옮기는 것이 미술의 목적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또한 일반대중도 얼마나 예술이 갖는 기능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려하는가.

역사의 한순간이 요구하는 것과 그 시대의 상황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에 의한 모든 예술가의 활동은 결정된다. 예술적 창조는 그 시대와 분리하여 생각 할 수 없듯이 우리시대는 진보에 대한 믿음과 과학에 의한 세계 변화의 가능성들로 가득차 있다.

모든 분야에서 변화는 곧 발전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변화와 새로움을 추구하는 탐구를 위한 탐구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예술분야에 있어서 이 새로움에의 요구는 이른바 전위의 시대를 낳았다. 그러나 도약이란 기존의 것을 파괴하지 않고는 이루어 지지 않는다. 예술 작품은 이제 꿈을 유발하는 가공세계가 아닌 예술가나 학자들이 새로운 현상에 귀기울이는 문명사회의 비중을 가진 대상이기 때문이다.

박종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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