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3년전 마침내 신창원이 잡히고, 그에게 2억9천만원을 털린 50대 예식업자가 요즘 웬만한 서울 아줌마들이 '청담동 한복'이아니면 안입는다는 그 '청담동 갑부'로 밝혀졌을 때 국민들의 신창원 적개심은 하루아침에 청담동 갑부에 대한 적개심으로 바뀌었었다.
신출귀몰하던 신창원이 잡힌 것은 어쩐지 애석하고 고관·대작이 신창원에게 털린 것이 오히려 고소하다는 뒤틀린 집단심리였다. 엊그제 대구·경북 사람들은 IMF의 잔영(殘影)이 '부익부 빈익빈'의 골을 더욱 깊이 파먹고 있는 뼈아픈 현실에 또 다시 통탄해야 했다.
서울졸부들의 무지막지한, 안면몰수형 아파트 투기는 지방사람들을 열등감에 빠뜨리고, 샘나게 하고 욕하게 만들었다. 점잖은 체면에 욕하기 뭣한 사람들은 『에이, 구팔』로 대체했다. 그리고 질문했다. 『누가 '더' 강도인가?』
△꼭 1주일전 국민들은 행복했다. 막노동판, 쉰 떡으로 주린 배를 채워가며 평생을 모은 재산 270억원을 미련없이내던진 제주도 강태원옹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富)의 대물림은 자식들에게 독약을 물려주는 것과 같다는 그의 말은교과서 어디에도 없었다.
영남의 자랑, 경주 최부잣집이 '3대이상 부자없다'는 속설을 뒤집고 60년대까지 12대 동안 만석꾼을 유지했던 것도 '재산을 절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흉년에 논 사지 말라'는 공생(共生)의 가훈을 후손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지켜온 덕분이었다. 이 기쁨 이 감동에 찬물을 끼얹다니….
△서울 강남의 재건축아파트 17채 등 26채를 가진 50대 여자, 상가와 주택 16채를 보유한 남자는 변호사 여자는 의사인 부부, 5억원짜리 아파트 분양딱지를 8개나 사서 팔고 해외를 제집 드나들듯 놀고 있는 50대 남자-국세청이 자금출처 조사한답시고 공개한 부유층의 투기사례다.
조사대상 480명이 가진 중대형 아파트가 무려 1천41채. 변호사·의사 부부는 지난 4년동안 소득이 3천300만원, 둘이 합쳐 연간소득이800만원이라고 했다. 지난해 서울대 신입생 3천800명을 조사했더니 고위 공직자와 변호사·의사 같은 전문직종인 아버지가 50%를 넘었다.
특히 서울출신 학생들이 절반이나 됐다. '이런 인연'들이 훗날 투기에, 부의 축적에, 특권의식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사정없이서울로 가려는 것일까?
△국세청은 만만한 게 봉급쟁이인가. 입만 떼면 중산층·서민층 조세경감 하겠다면서 정작 자영업자·의사·변호사 등 탈세의 원천엔 눈감아놓고 원성이 자자하니 뿌리뽑겠다고 공포를 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기가 불법은 아니다. 자금출처만 분명하다면. 백성들이 부유층의 투기에 분노하고, 공범(共犯)이 되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이유가 이 사회에 만연한 가진자들의 탈세행위에 있고, 이를 눈 감아준 세무행정에 있다. 이 뒤틀린 집단심리의 책임, 정부가 져라.
강건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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