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라고 하든 이 시대가 해결해야 할 난제중의 난제는 지구의 위기임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20세기 산업문명이 초래한 환경파괴가 이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유엔기구의 각종 연구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은 홍수와 혹한을 주기적으로 불러 해마다 수천만의 이재민을 발생시키고 사막화를 가속화, 기아를 심화시키고 있다. 또 물부족도 심각해 30년뒤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 물부족을 겪게 되고, 서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은 한발로 사람이 살 수 없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뿐만 아니라 생물종의 다양성을 위협해 지구상의 어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 포유류 수만종이 매년 멸종되고 있으며,해수면의 상승은 해안지역과 주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100년간 인류의 무분별한 자원사용과 개발이 빚은 자업자득이다.
이 같은 지구위기에 대해 인간은 환경관리주의와 생태주의 두가지 방식으로 해결책을 모색해 왔다. 환경관리주의는 환경파괴로 인한생존의 위협이 걱정되지만 아직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고 보고, 훼손과 오염을 예방하고 방지한다면 현재의 산업문명의 구조를 바꾸지 않고도 환경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환경파괴적인 개발 및 생산을 지양하고 환경기술과 환경산업의 강화를 강조한다. 이에 비해 생태주의는 환경위기는 복구불능의 수준으로 심각하며, 그 원인이 대량생산에 기초한 산업기술과 소비문명에 있기 때문에산업기술문명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생태주의자들은 이러한 입장에서 농경시대 삶의 복원이나생명공동체사회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들 두가지 방식 가운데 세계 각 정부가 채택하고 있는 것은 환경관리주의 입장이다. 환경선진국이나 후진국 할 것 없이 92년 리우환경회담에서 채택한 이른바 '지속가능한 개발'이란 기본의제를 받아들여 경제성장과 환경보존을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리우환경회담후 10년간의 지구살리기의 성과가 예상과는 달리 실패한 것으로 드러나고, 미국이 도쿄기후협약에 탈퇴하는 등 나라마다 이해가 엇갈려 목표달성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학계·연구소·민간단체 중심의 생태주의가 더욱 호소력을 얻어가고 있다.조선의 옛 선비들은 요즘식으로 말하면 환경관리주의와 생태주의 두가지 입장을 동시에 견지해 온 것이 아닐까 싶다.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도 천지의 만물중에 인간이 가장 빼어나다고 본 인간본위 정통유학의 사고지평은 환경관리주의 입장에 가깝다. 대체로 선과 악, 귀한 것과 천한 것을 상하관계로 구분하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계열이 이 부류에 속한다. 반
면 사람(人)과 물(物)을 대등한 관계로 파악하는 기일원론(氣一元論)계열의 선비들은 생태주의 입장에 가깝다. 이들은 사람이 만물중에 가장 귀하다는 인간우선의 체계나 사고를 부정하고, 사람의 편에서 보면 동식물이 천하지만 동식물의 편에서 보면 사람이 천하게 보인다는인물균(人物均)의 사상아래 동식물이나 자연을 함부로 대하거나 낭비해서는 안된다며 아낄 것을 강조했다.
박희병 교수(서울대 국문학과)는 자신의 저서 '한국의 생태사상'에서 생태학(Ecology)이라는 말은 조선시대엔 없었던 현대 서양의 용어이지만 우리의 전통사상엔 서양이론들에 손색없는 생태적 사상이 담겨 있다고 강조하고, 이규보 서경덕 신흠 홍대용 박지원의 심원하면서도 풍부한생태적 사유를 적시해 보여준다.
우선 이규보의 시에 나타난 만물일류(萬物一類)사상을 보자. 이규보는 '쥐를 놓아주다'(放鼠)라는 시에서 "사람은 하늘이 낸 물(物)을 도둑질하고/너는 사람이 도둑질 한 걸 도둑질하누나/다같이 살기위해 하는 짓이니/어찌 너만 나무라겠니"라며 잡은 쥐를 놓아주기도 하고, '이를 잡다'(문蝨)에서는 "재상으로 이를 잡고 있는 자/나 말고 또 누가 있을까/어찌 화롯불이 없으리요만/땅에 내려놓는 건 자비심 때문"이라면서 이를 화롯불에 던지지않고 땅에 놓아주었다고 했다.
이규보의 이 같은 자세는 인간중심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나의 생명과 다른 존재의 생명이 서로 하나의 질서체계내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그 질서의 도(道)를 지키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규보는 생명이 있고 없고를 막론하고 천지간의 모든 존재는 하늘의 원기(元氣)를 받아 생성되고, 받은 기가 다해 죽음을 맞으면 다시 하늘의 원기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박지원의 '호질'(虎叱)은 인간과 문명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는 이 글에서 인간은 메뚜기 누에 벌 개미 노루 사슴 물고기 소 말 등 온갖 동물을 닥치는 대로 해칠뿐만 아니라 인간 서로간에도 잡아먹고 죽이지만, 호랑이는 초목은 물론 물고기나벌레를 함부로 해치지 않고 하찮은 것들이나 동류를 잡아먹지도 않기 때문에 늘상 인륜도덕을 외치는 인간보다 더 어질다고 말한다.
그래서 호랑이의 입을 빌려 그물에서 창·칼·총에 이르기까지 온갖 도구와 장치를 발명하여 작은 생물을 닥치는 대로 해치고 잡아먹는 인간을 천지간의 가장 큰 도적(天地之巨盜)이라고 질타했다.
홍대용의 '의산문답'(의山問答)은 지구가 인간과 동식물의 생명활동이 전개되는 거대한 장(場)임은 물론 그 자체가 살아숨쉬는하나의 유기체임을 강조했다.
기존의 관념사상에 사로잡힌 유학자를 허자(虛子) 새로운 사고체계를 추구하는 유학자를 실옹(實翁)으로 설정, 문답형식으로 진행되는 이글에서 실옹은 허자에게 '지구는 활물(活物)이다. 흙은 그 살이고 물(水)은 그 피이며, 비와 이슬은 그 눈물과 땀이요, 바람과 햇빛은 그 혼백이며 기운이다.
그러므로 물(水)과 흙은 안에서 빚어내고 햇빛은 밖에서 열을 가해 원기를 모아 온갖 물(物)을 생성한다.풀과 나무는 지구의 모발이고 사람과 짐승은 지구의 벼룩이다'고 가르친다.기(氣)철학 선비들의 이 같은 만물일류(萬物一類) 인물균(人物均)의 세계관은 그 실현성 때문에 관념론에 그치게 될 맹점이 없지 않으나 논리체계는휴머니즘에 기초한 서구의 생태이론보다 더 철저한 면이 없지 않다.
박희병 교수는 "우리의 전통사상에는 오늘날의 문명사적 상황이나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주목할 것이 많다"고 말하고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지 않고 내면적으로 깊이 결부시켜 파악한 통찰력은 서구의 합리적 세계관에 기초한 생태학의 미비점을 보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생태의 중요성 때문에 인접학문과의 연계가 갈수록 활발해지는 생태학은 농경생태학 경제생태학 경관생태학 습지생태학 등이 나올 정도로 서구에서는 독립된 학문으로 기초가 탄탄하나 우리는 아직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우리의 전통사상에 기반한 연구는 미미한 실정이다.
최종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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