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뛰어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을 떼어놓고 보면, 다른 동물이 뛰어난 점도 많다.
특히 자기보존 능력과 자체 삶의 질에서 보면, 홀로 선 인간은 동물 가운데서도 가장 나약하고 불쌍한 존재이다. 깊은 산 속에 맨 손으로 들어서 보라. 망망대해를 홀로 건너보라. 누가 감히 만물의 영장임을 자신할 수 있겠는가? 그 속에서도 다른 동물들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잘만 살아간다.
모든 동물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고 누릴 줄 안다. 동물의 먹이사슬에서 천적은 서로를 즉시 알아본다. 솔개를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병아리도 솔개가 머리 위에 뜨는 순간에 머리를 박고 방어자세를 취할 줄 안다. 새들은 아파트 투기가 필요 없을 정도로 각자의 둥지를 지을 줄 알며, 산부인과나 소아과 없이도 알을 까고 새끼를 길러낸다.
병이 나면 보험에 들지 않아도 스스로 약초나 약수를 찾아 치료하는 동물도 많다. 동물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도 안다. 봄이면 새끼를 낳고, 여름에는 열심히 기르며, 가을에는 겨울을 위해 비축한다.
철새는 수만리 길을 날아 필요한 온도와 환경을 찾아내고야 만다. 멧돼지는 피임을 하지 않아도 내년에 자연 생산될 식량을 미리 알고 알맞은 수의 새끼를 낳는다. 심지어 야생의 동물은 성형수술을 하지 않아도 추하게 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들 살아가는 방법 중에 인간이 스스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인간이 살기 위해 갖춘 본능이라고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울부짖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인간은 자신에게 해로운 음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누가 자신을 해칠 사람인지도 저절로 알지는 못한다. 결국 배우지 않고서는 모든 종류의 선과 악도 구별하기 어렵다. 우선 경제적 선과 악에서부터, 정치적, 문화적, 학문적 선과 악도 구별하기 어렵다. 무엇이 좋고 해로운지를 인간은 남에게 배우거나 스스로 체험하기 전에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이렇게 짐승보다 나약한 인간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서로의 나약함을 메워주고, 본능에 없는 것을 채워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서로 도와주고 서로 배우는 수밖에 없다. 서로 도움으로써 서로의 나약함을 메울 수 있고, 서로 배움으로써 본능에 없는 것을 습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움과 배움은 오직 함께 살 때만 가능하다. 인간은 함께 살 때 비로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고, 자식을 낳아 기를 수 있으며 그리고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고 정말로 사는 것처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께 사는 길의 기본 틀은 가족이다. 가족을 기초로 하는 인생살이는 가끔 바다를 건너는 항해에 비교되곤 한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이름의 배에는 결정적 약점이 있다. 그 약점을 모르기 때문에 많은 배들이 좌초한다. 인생의 바다를 건너는 가족이라는 배에는 브레이크도 없고 후진기어도 없다.
암초가 나타나면 슬기롭게 피할 수 있을 뿐, 멈출 수도 없고 물러설 수도 없다. 남편이 노를 저으면, 아내는 키를 잡아야 하고, 아내가 노를 저으면, 남편이 키를 잡아야 한다. 또한 세월의 바다는 늘 고요하고 평화로운 것도 아니다.
파도에 시달리며 암초를 피하다 보면 가족 서로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물론 함께 살아야만 하는 인간의 특성 상, 불륜이라면 쾌적하고 로맨스라면 신선하기 마련이다. 항해에 필요한 돈이 부족할 수도 있고, 각자의 성격이나 항해법이 다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배를 뒤집어야 하겠는가? 지금 세 가족 중 한 가족이 이혼한다고 한다.
어쩌면 이는 어설픈 뱃놀이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이제 여름이 지나면, 수많은 선남선녀들이 새로운 배를 탈 것이다. 그러나 결혼으로 시작되는 항해는 낭만이나 불륜, 돈이나 성격을 초월해 있는 오직 인간만의 살 길이다. 항해가 끝날 무렵 아내의 모습은 남편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요, 남편의 모습은 아내의 삶을 비추는 거울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신창석 대구가톨릭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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