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창설자 일대기 소르본느대 최우수 논문 뽑혀

대구 앞산 밑에 총원을, 포항에 모원을 두고 예수성심에 힘입어 가난하고 외로운 이웃들을 섬기는 예수성심시녀회가창설자와 함께 프랑스 전역에 알려지게 됐다.

계기는 이 수도회 창설자인 프랑스인 루이 데랑드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논문이 근년에 소르본느 대학의 최우수 석사졸업논문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고, 이 논문을 쓴 올리비에 시브르(25·종교사학 전공)씨가 지난 19일부터 일주일간 예수성심시녀회 대구총원에서 수도자들을 대상으로 창설자의 삶과 영성에 대한 강연을 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한국명이 남대영인 루이 데랑드(Louis Deslandes, 1895~1972) 신부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1922년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뒤 다음해 6월5일 부산항에 도착, 한국선교의 첫발을 내디뎠다.

대구교구와 부산교구에서 본당사목에 전념하던 그는 1935년 현 예수성심시녀회의 모체인 '삼덕당(三德堂)'을 경북 영천에 설립했다.

이후 눈길에 쓰러진 한 병든 할머니와 두명의 어린고아를 데려다 돌보고 키우면서 사회사업을 시작, 1946년 사회복지법인 성모자애원을 설립했다. 현재 예수성심시녀회는 600여명의 수도자와 전국 77곳 및 프랑스, 로마, 대만, 볼리비아 등에 분원을 지닌 대규모 봉사 수도회로 성장했다.

루이 신부는 1962년 한국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수여받았으며, 1969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뇌르훈장을 수여받았다. 1965년 은퇴한 그는 경북 포항으로 거처를 옮겨 사회복지활동에 헌신했으며, 77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올리비에씨가 자신과 전혀 다른 시대를 산 남대영 신부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99년 3월 파리. 파리 가톨릭대학 도서관에서 석사학위논문주제를 찾고있던 그는 예수성심시녀회 파리분원 소속 한국인 수녀와 우연히 그곳에서 만났다.

"프랑스에선 성소 위기로 수도복을 입은 성직자를 잘 볼 수 없었어요. 그런데 동양인 수녀가 수도복을 입고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쾌활하게 선교활동을 펴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그 수녀로부터 예수성심시녀회의 창설자가 프랑스인이란 얘기를 전해 들었고,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평생을 선교와 봉사에 바쳤던 프랑스인 선교사의 일대기를 논문으로 옮기기로 했다.

한국인 부인 김효정(31)씨의 도움과 남 신부의 편지, 일기, 피정노트 등을 자료로 제출한 논문'사도직의 사제 선교사 루이 데랑드'(남 신부가 생전에 늘 썼던 사인)은 최고 점수를 받았다."남 신부를 통해 당시 해외 선교사의 활동상과 영성의 보급, 한국에서의 가톨릭 전파 등을 알 수 있었지요".

남 신부는 자신의 내면에 충실하고, 선교사업의 결실을 맺은 진정한 수도자이며 큰인물이라고 거듭 표현한 올리비에씨는 "사회와의 접촉에주저하지 않고, 즐겁게 영성을 전하는 예수성심시녀회에 대해서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올리비에씨의 논문은 소르본느 대학 등 각 대학과 공립도서관에 소장돼 한국 가톨릭선교의 역사를 알리고, 가톨릭을 프랑스에 역보급(?)하는데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예수성심시녀회 이광옥 스콜라스티카 총원장은 "2005년 창설 70주기 준비사업으로 한국어로 된 올리비에씨 강연 녹음테이프를 전국 분원에 보급하고, 창설자의 활동상을 전 수도자에게 교육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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