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이 슬픔을 통해 정서를 정화시켜 주는 카타르시스 기능을 하듯이 희극도 웃음을 통해 사회적 긴장을 이완시킨다'고 했다. 희극의 효용성을 인정하면서도 비극의 하위 장르로 생각했던 셈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선그 사정이 달라진다.
베르그송은 '삶은 긴장과 유연성의 조화를 요구하는데, 웃음은 여기에 반하는 행위에 대해 가벼운 제재를 가해 사회 속으로 포용하는과정'이라 했다. 희극배우는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자신을 징벌의 대상으로 변형시켜야 하는 '자살특공대'적 운명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베르그송의 정의에 가장 충실한 희극배우로는 찰리 채플린을 꼽을 수 있으나 국내 연예인으로는 27일 작고한 코미디언이주일(본명 정주일)의 경우가 아닌가 한다. 폐암으로 투병하다 영영 웃음을 거둔 그는 개그의 첨단에 서서 '코미디의 황제'로 군림했지만,그의 말대로 '눈물을 아는 사람만이 진짜 웃음을 안다'는 사실을 일깨운 자살특공대적 운명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외모 때문에 숱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의 표현대로 '주저앉은 코에 500여개에 달하는 머리카락뿐인' 얼굴이었다. 그 때문에 1970년대 후반까지는 쇼 무대나 TV 출연에 퇴짜를 맞기 일쑤였다. 방송에 출연하면 시청자들의 항의를 받아야 했다. 78년 TV에 불혹의 '늙은 신인'으로 캐스팅됐지만 방송사가 시청자들의 혐오감을 우려해 방송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듬해 '못 생겨서죄송합니다'로 '2주일'만에 떠서 성씨까지 이씨로 바꿨다.
▲이런 그가 80년대에 '코미디의 황제'가 됐을 때도 여전히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였다. 그의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는 이 무렵 오리춤과 함께 특유의 어눌한 억양과 맞물려 전국민의 입에 오르내렸던 '뭔가 보여 드리겠습니다' '일단 한번 와 보시라니깐요' 등은지금까지도 살아 숨쉬는 유행어다. 81년부터 4년 연속 연예인 납세 1위를 기록했던 그는 못 생겨서 무려 18년 동안 무명으로 헤매면서 '눈물 속의 웃음'을 길어올렸던 코미디언이었을 게다.
▲한때 국회의원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던 그는 '정치는 한 마디로 코미디, 4년간 코미디 많이 공부했다'며 연예계로 컴백한 천상 코미디언이었지만, 그의 삶은 결코 희극적이지 않았다.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도 금연 캠페인을 벌여 금연 열풍을 불렀던 그는 옥타비오파스의 유머 예찬처럼 '현대정신의 가장 위대한 발명'을 위해 웃음의 바닥에 진한 우수를 깔고 있었다. 베르그송이 말한 '자기보존에서 벗어나 자신을 예술작품으로 대하는 순간 생겨나는 형식'을 빚어 왔던 그는 이제 웃음을 거뒀지만, 그가 빚은 웃음은 오래 살아 숨쉬리라.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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