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도무지 판단의 잣대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미국 국적과 한국 국적 중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할 경우, 어느 것을 버리고 어느 것을 취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렵다. 더욱이 탈세나 투기를 하면서까지 재물을 모으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는 더욱 어렵다. 판단 혼돈의 시대에 살고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가치 판단의 문제를 의외로 간단히 해결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 정답 두 개를 동시에 가지면 된다. 즉 선거 유세장이나 학교 강단같은 공공장소에서는 도덕과 애국심에 호소하는 쪽으로 얘기하면 되고, 일상으로 되돌아와서는 무조건 '돈 되는 쪽'으로 목표를 맞추면 거의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말할 나위 없이 이런 '두개의 얼굴'은 대단히 위험하다. 그런데도 지도층이나 상류층은 두 개의 답안을 가지고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다. 오히려 칼 두자루를 흔들지 못하는 서민을 "능력없다"며 비웃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어느덧 우리 사회가 이런 '두 얼굴'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춘추오패의 하나인 제나라 환공(桓公) 때 역아(易牙)라는 요리사가 있었다. 권모술수에도 능해 음식 솜씨를 내세워 환공에게 접근했다. 한 번은 환공이 농담조로 "일찍이 날 짐승과 네발 짐승, 벌레 종류와 온갖 생선 맛은 여러번 봤으나 아직 사람 고기 맛은 어떤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날 점심상에 젖먹이 염소새끼보다 연한 고기가 올라왔다. 환공은 식사를 끝내고 무슨 고기인데 그토록 맛있느냐고 묻자 역아는 "신의 자식은 겨우 세 살입니다. 듣건데 임금께 충성하는 자는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상감께서 아직 사람 고기를 맛보지 못하셨다기에 자식을 죽여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뒤로 환공은 역아를 끔찍이 총애했다.
그러나 당시 정사를 돌보고있던 관중(管仲)은 생각이 달랐다. 역아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저지를 '두 얼굴'의 간신임을 간파했다. 관중은 역아를 내쫓은 후 환공에게 절대 가까이 할 인물이 아니라며 유언까지 남겼다. 그러나 관중이 죽고 포숙아가 정사를 맡자 환공은 다시 역아를 복직시켰다. 역아는 결국 난을 일으켜 나라를 어지럽히는데 환공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관중의 유언을 깨닫는다.
서양에서는 두 얼굴을 '유다의 키스'에 비유한다.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해 체포하지 못한 대사제들은 예수의 제자인 유다를 은화 서른 닢으로 매수했다. 예수께 키스만 해주면 된다는 조건이었다.유다는 예수께 다가와 "선생님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하면서 입을 맞추었다. 그때 무리가 달려들어 예수를 붙잡았다. 사랑과 존경의 표시인 입맞춤도 이렇게 두 얼굴을 하고 있다.
최근 총리지명자 두 사람에 대한 국회청문회는 '두 얼굴'의 결정판을 보는 것 같다. 지도자로서의 학식과 외모는 충분히 갖추고 있는 사람이 '도덕시험'을 치른 결과 또 하나의 얼굴이 존재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재산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지도자로서는 입에 담기도 힘든 이중 국적 문제, 탈세와 부동산 투기를 하고도 별로 죄의식이 없는 그런 인물이었다. 다행히 국민은 그들을 냉혹하게 심판했다.
그것은 맛있는 고깃상이라면 내용물에 관계없이 일단 챙겨놓고 보고, 입맞춤도 그것이 죽음의 키스든 배반의 키스든 아랑곳 않고 무조건 받고 보는 거대한 탐욕 사회를 질타하는 거룩한 분노의 목소리였다. 다만 그것이 정치적 흥정에 의한 결과물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미국 시스템이 훌륭한 것은 문제가 발견됐을 때 이를 즉시 해결하려는 원상복구력이 높다는 점이다. 엔론 사태로 출발한 회계 부정사건은 투명성 하나로 큰 소리쳐 온 미국의 신뢰도를 땅에 떨어뜨렸다. 그러나 당장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회계부정은 주주의 이익만을 우선시 해온 미국 자본주의의 맹점임을 밝혀냈다. 미 의회는 즉각 기업부정 처벌 강화법안을 마련하고 증권거래위원회는 의심스런 상장사에 최고경영자가 확인한 재무제표를 제출토록 요구, 서둘러 상처를 봉합했다. 앞으로 경영학 수업시간에 윤리 과목을 필수적으로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의 지도층은 아직도 역아의 고깃상과 유다의 키스에 목말라하고 있다. 그들에게 이번 청문회는 훌륭한 도덕 수업이 될 것이다. 이런 도덕 수업이 비단 국회뿐 아니라 교실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보편화된다면 우리는 21세기를 보장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윤주태(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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