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는 문화적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번의 거센 바람(風)을 경험하였다. 하나는 정치 문화의 기존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꿀 것처럼 보였던 노무현 바람이고, 다른 하나는 그 여진이 여전히 느껴지고 있는 '붉은 악마' 바람이다.
붉은 악마 바람은 프로축구의 열기로 이어지고 있는데 반해 소위 말하는 노풍은 이미 소멸하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 바람들은 "우리 문화의 지형도를
정말 바꾸어 놓았는가?"라는 결정적 질문에 부딪히면 잦아드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올 상반기 우리 사회를 휩쓸고 지나간 두 번의 바람이 문화적 현상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과연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을 예고하는지는여전히 미지수이다. 정치에 관해서는 특히 그렇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은커녕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도, 조직도, 지역 기반도, 학벌도 없는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 경선 과정에서 일반인의 예상을 뒤엎고 전국적인 스타로 떠올랐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반대당의 이회창 후보를 상당한 포인트 차로 앞지르게 만들었던 노무현 돌풍은 이제 그 기운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잦아들었다.
만약 노풍이 하나의 사회적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다면, 그것은 노풍이 일어난 것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가라앉았기 때문일 것이다. 노풍을 잠재운 것은 역설적이게도 월드컵 열풍에 힘입은 정몽준 의원의 돌풍이다. 그를 대선 다크호스로서 떠오르게 만들고 있는 정풍의 궤적은 노풍의 그것과 거의 닮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바람이 또 다른 바람을 일으키고 또 그것에 의해 소멸되는 것인가? 우리 국민이 변덕스러워서 한때는 히딩크를 대통령으로 원하기도 하고, 또 한때는 노무현을 개혁을 실현할 수 있는 민주적 대통령 후보로 만들기도 한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 국민은 막강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현대 왕국 출신의 정치인이 이 나라를 경제적으로 관리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하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국민 모두가정치문화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노무현 바람, 히딩크 바람, 정몽준 바람의 진원지는'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무엇 때문에 새로 시작하려고 하였던 것인가? 우리가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투사하였던 희망은 도대체 무엇인가?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노풍이 소멸된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첫째, 우리는 3김으로 대변되는 기성정치를 혐오하고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새로운 정치'를 희망한다. 종종 세대교체라는 말로 대변되는 이러한 희망은 우리의 정치적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낸다.
둘째, 우리는 혈연, 지연, 학연과 같은 연고주의를 타파할 수 있는 '민주적 정치'를 원한다. 노무현이 조직도 없고, 지역 기반도 없고, 학벌도없는 유망한 주자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셋째, 우리는 국민의 자발적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덕(德)을 갖춘 정치인'을 원한다. '노사모'라는 국내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자발적인 정치인 팬클럽이 노풍에 기여했다는 것은 이 점을 잘 말해준다.노풍이 소멸된 것은 노무현 후보가 국민의 이러한 바람을 충족시켜주지 못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노풍을 잠재운 정풍이 아무리 무서운 기세로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정몽준 의원이 과연 이러한 국민의 희망에 부합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정치의 기후변화가 지금처럼 변덕스러울때는 모름지기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앞날을 가늠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회적 정의'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풍은노무현 바람과는 정반대의 암초에 부딪히게 된다. 돈도 있고, 조직도 있고, 학벌도 있는 정치인이 절대권력을 가져도 되는 것인가? 우리의 바람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 곰곰이 따져보아야 할 문제이다.
이진우(계명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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