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년간 한우산업의 역사는 규모화와 전업·기업화 및 대형화였다'.지난 5월 농촌진흥청 축산기술연구소가 펴낸 1천958쪽 짜리 '축산연구 50년사'가 내린 한우산업에 대한 결론이다. 지난 1950년 39만3천마리였던 한우는 지난해 140만6천마리로 늘었고 전국 77만여 한우농가는 23만5천가구로 줄었다.
농가당 1마리에 불과했던 한우는 6마리로 불었다. 50마리를 넘는 한우를 기르는 농가수도 지난 1972년 82가구에서 5천900가구로 증가했다. 이처럼 지난 50년 간의 한우산업 변화는 급속한 규모화였다. 그러기에 현재 안동 4곳의 목장에서 안동민속한우란 영농법인을세워 4천400여마리를 기르는 권혁수(46) 대표는 "이제는 '퇴직하면 소나 기르지'라는 식의 이야기는 더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우산업도 농업의 어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규모화가 빠르게 진행, 전업화 또는 기업화로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것.현재 20여마리의 한우를 키우는 30년 가까운 경력의 도영대 한우협회 영천시지부장은 "5, 6년 전만하더라도 영천에서 100마리 넘는 한우를 키우는 농가는 불과 10가구 안팎이었으나 지금은 20~30가구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360여명의 한우농가들로 구성된 대구경북한우조합 경우 회원의 2/3가 70~100마리 정도 기른다고 조합 김치영 상임이사는 전했다.
이같은 규모화는 정부가 쇠고기 시장개방에 대비, 90년대 들어 경쟁력 강화사업을 본격화하면서 급속히 이뤄졌다는 것이 경북도 축산과 김영보씨의 설명이다. 경북도에 따르면 지난 91년 10마리 미만의 사육 농가는 57만2천가구로 전국 한우농가 60만가구의 95.2%나 차지했다. 100마리 이상은 불과 157가구에 그쳤다.
그러나 10년 뒤인 지난해 말 10마리 미만은 19만4천가구로 전체 한우농가(22만4천가구)의 86.5%로 낮아졌다. 반면 100마리 이상은 1천100여가구로 전체의 5%에 이르렀다. 특히 500마리 이상도 37가구나 됐다. 이들 100마리 이상 대규모 한우사육 농가 1천100여가구 가운데 경북이 20%를 넘는 217호를 차지, 대규모 농장이 가장 많았고 경기는 180농가로 분석됐다.
영남대 자연자원대학 조석진 교수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한우농가들이 사육두수를 늘리면서 규모화가 더욱 확대되고 있는 추세"라며 "다산장려금 지급이나 송아지 생산안정제 실시 등의 효과인데 이러한 규모확대는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면적인 쇠고기 시장 개방 바로 직전인 재작년 7월 호주 현지 시장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LG유통의 지원을 받아 2천200마리의 한우를 사들여 키운 권혁수씨는 "수입쇠고기에 대항하는 방법은 규모화 밖에 없었다"고 규모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규모화는 90년대 후반들어 본격화된 쇠고기 브랜드화의 물결과 맞물려 더욱 가속화됐다. 현재 16농가가 영업법인에 참여, 2천마리를 기르며 안동황우촌이란 브랜드로 전국 9군데 매장에서 판매중인 황화섭(54) 대표는 "좋은 고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모 이상의 사육은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이었다"고 지적했다.
건국대 축산대 한성일 교수도 "브랜드화는 한우의 규모화를 요구하게 되고 전국 유명브랜드 대부분이 상당한 규모 이상의 소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교수가 지난해 전국 86개 브랜드 한우의 사육두수를 조사한 결과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것도 적지않지만 1천마리 이상 사육하는 브랜드가 절반인 43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규모화의 장점으로는 이러한 브랜드화의 촉진과 대량 구입에 따른 사료 구입비 절감, 사육시설 일부의 자동화 등을 통한 인건비 절감 등 경영비 절감 효과를 들 수 있을 것이라고 경북도축산과 김재수 축산관리담당은 분석했다.그러나 급속한 규모화는 또다른 문제점을 낳고 있어 정부차원의 대책마련이 이뤄져야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송아지의 안정적인 공급에 차질을 빚고 영세한 축산농가들의 몰락이 가속화되고 있는 점이다.
소규모로 10마리 이하의 한우를 키우며 송아지를 낳아 시장에 내다 파는 번식한우 농가가 규모화와 대형화에 밀려 점차 사라지면서 송아지 시장이 급격히 불안정해지고 송아지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버려 비육농가들의 원가부담이 가중된 것.
현재 350마리를 키우는 상주시 낙동면 한우사육 작목반인 고우회 송재원(50)회장은 "각종 정책이 규모화에 맞춰지고 혜택을 못 본 영세한 한우사육 농가들은 점차 사육을 포기함에 따라 송아지시장에서 송아지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불안하다"고 했다. 송아지 가격 상승은 곧바로 원가부담으로 직결, 기반붕괴로 연결돼 송회장은 기존축사 옆에 건물을 새로 지어 송아지를 자체 공급할 계획이다.
송회장의 고민은 대규모 한우사육 농가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것. 따라서 종전 번식과 비육농가로 나뉘는 전문화 추세에서 벗어나 비육농가도 자체 송아지를 생산하는 번식을 함께 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고 의성축협 안대호 전무는 설명했다.
400마리를 기르는 군위군 효령면 장기리 영진농장 대표 전영환(51)씨도 "송아지를 낳아 파는 소규모 농가가 갈수록 없어짐에 따라 송아지 문제가 커져 아예 자체에서 번식시켜 공급할 계획"이라며 축사를 새로 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영대 지부장도 "주위의 한우농가들이 번식과 비육을 함께 하는 일관사육으로 점차 바뀌는 것 같다"고 전했다.
최근 송아지난으로 대농장과 영세농이 공생하는 소위 '윈-윈'(WIN-WIN)전략으로 통하는 계열화도 시도돼 성공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속한우 권혁수 대표는 "대농장에서 송아지를 소농가에 사준 뒤 사육비를 지원, 큰소가 돼 송아지를 낳으면 시중가로 산정해 일정금액을 지불하고 대농장으로 입식시키는 방식인 계열화를 준비 중"이라며 "대농가와 소농가 모두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권씨는 "영세한 소규모 한우농가도 살 수 있는 계열화를 통한 규모화를 이제는 모색해 볼 때가 된 것 같다"고 공생론을 주장했다.계열화가 될 경우 대농가는 안정적인 송아지 공급이 확보돼 비육에 전문화할 수 있고 소농가는 기존축사를 활용하는데다 판로확보로 농가소득이 보장돼 농가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