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종고 세상읽기-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길

내가 세계에서 좋아하는 곳 중의 하나는 하와이이다. 나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최고의 휴양지로 인기있는 곳이라 설명할 필요가 없고, 내년에는 한국인이 그곳으로 이민간 지 백주년이 되는 해이라 여러 행사가 계획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그곳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는 한 마디로 동서양의 접점(接點)이라는 뜻에서이다. 호놀룰루의 '동서센터'가 있는 동서로(East-West Road)에 서 있으면 정말 내가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곳에 서 있구나 하는 실감이 난다.

나는 여러번 이곳에서 내가 걸어온 길, 서양위주에서 점점 동양으로 돌아오는 내 학문과 사상이 달려온 노정을 돌이켜보며 생각을 가다듬곤 해왔다.

"동양은 동양, 서양은 서양, 너희는 영원히 못만나리"라 읊은 사람은 영국인 키플링이었다. 그러나 동서양이 아무리 다르더라도 만나는 기회가 점점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고, 동양의 서양화, 서양의 동양화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즘은 귀가 따갑게 세계화(Globalization)란 말을 듣고있어, 동양과 서양을 따로 얘기하기가 힘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동서양이 꼭 같아 구별의 필요와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인가? 하와이대학 철학과에서는 지리적 장점을 살려 1940년대부터 10년마다, 지금은 5년마다 한번씩 '동서양철학자대회'를 개최해왔다. 그야말로 동서양의 최고지성인들이 모여 인류의 가장 근본적 문제를 진지하고 심도깊게 논의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59년의 제3차 대회에서 서울법대 유기천 교수가 '문화이해에서의 장(場)의 이론'이란 논문을 최초로 발표하였고, 그 후 몇분의 학자가 초청되었다.

이 대회의 정신적 기초를 제공한 예일대학의 노스롭 교수는 "서양은 명제지향의 문명(postulate-oriented civilization)이고, 동양은 직관지향의 문명(intuition-oriented civilization)이다"는 명제를 발표하였다.

그후 많은 학자들이 이 명제를 검토하고 극복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무언가 정곡을 찌른 것 같은, 오늘날에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진실을 담고 있다. 중국인 법철학자 우칭슝(吳經熊) 박사 또한 이곳에서 2년간 가르치며 유명한 '동서의 피안'(Beyond East and West)이라는 자서전을 썼는데, 이 책은 한국 가톨릭교인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책 중의 하나이다.

오 박사의 책을 읽어보면 그처럼 서양학문에 해박한 학자도 드문데, 그래도 역시 동양학자다운 정신과 풍취를 십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느낌이다. 분명히 동양은 동양으로서의 독자성과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그동안 1세기 남짓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물결 속에서 잠식되었을 뿐이지 동양의 정신과 미(美)는 서양을 능가하는 측면을 분명히 갖고 있다.

동양을 사랑하는 서양학자들은 "왜 그렇게 풍부한 전통을 너무 빨리 포기하려고 하느냐?"고 오히려 충고해주고 있다.

1세기 전에'서유견문'(西遊見聞)을 쓴 유길준 선생도 우리가 서양옷을 입고 서양음식을 먹는다고 진정한 개화는 아니라고 갈파하였다. 진정한 개화는 오히려 한국인이 한국인다움을 바르게 지키며 서구문명의 질에 뒤지지 않는 수준을 유지하는 데에 있다고 보았다.

이런 면에서 일본의 스승 후쿠자와 유기치(福澤諭吉)가 일본이 개화하기 위해서는 아시아를 탈피해야 한다는 이른바 탈아론(脫亞論)을 주장한 것과 정신을 달리한다. 요즘은 일본에서도 탈아론이 비판되고 오히려 탈구입아(脫歐入亞)가 강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아시아인으로서의 체통과 정신을 지키면서도 서양문명과 통하며 그들을 능가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전적 덕목, 즉 인(仁)과 의(義), 그리고 겸손 등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를 몸으로 체득하여 그것을 기초로 좋은 사회를 가꾸어 나가는 데에 있다.

이것이 마음으로 동양과 서양을 만나게 하고, 또 그 간극을 극복하는 길이다. 왜냐하면 결국 동양의 가치나 서양의 가치나 긍극적으로는 좋은 것을 권하고 나쁜 것을 피하도록 하는 공통의 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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