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동포 손이 약손

"어찌 살라고…".허공을 맴돌다 스러지는 넋잃은 외마디.

제15호 태풍 '루사'가 휩쓸고 간 한반도 삶의 터전에는 절망만이 감돌아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수장(水葬)된 가족, 흔적없이 사라진 정든 보금자리, 흙범벅이 된 가재도구, 물속에 잠긴 농작물과 떨어진 과일들….입으로, 글로 형언할 수 없는 참담한 상황이 삽시에 우리 눈앞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자식이 온데 간데 없는데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겠습니까"라며 절규하는 부모, "70평생 농사 일에 이런 날벼락은 처음"이라며 탄식하는 농부.

아수라장에다 만신창이가 돼버린 우리의 이웃들.원망스럽다 못해 저주스러운 수마(水魔)는 수재민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더욱 이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고 있는 것은 생쌀과 생라면 등 먹을거리는커녕 연명할 마실 물조차 없는 절박한 생지옥 같은 상황.

게다가 밤이 되면 몸을 누일 곳도 마땅찮은데다 초가을의 찬이슬을 막아줄 이불조차 없어 거의 뜬눈으로 새벽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과 재산을 삼키고 앗아간 데다 교통.통신 등 국가 기간망을 뿌리째 흔들어 놓은 '루사'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水魔가 할퀸 상처

아직 정확한 피해집계가 되지 않았고 통신두절로 피해상황 보고조차 이뤄지지 못한 지역도 많아 정밀조사후 재산피해 규모는 '태풍 재해'기록을 경신, 사상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이같은 예상이라면 '고통의 현장'이 제자리를 잡으려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악의 절망 상황속에도 수재민을 비롯한 민.관.군의 복구와 재기의 열기가 물난리의 상처를 씻어내고 있다. 할 일을 제쳐두고, 먼길을 마다않고 서둘러 달려가 수재민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며 복구의 삽질을 거든 자원봉사자들의 행동은 우리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는 청량제이다.

문을 닫은 자영업자, 새학기 수강도 미룬 대학생, 휴가를 내고 달려 온 직장인 등 자원봉사자들은 재해현장에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고 있다. 쓰레기와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쓰러진 벼 세우기와 유실된 도로 및 하천 둑 복구에 힘을 모았다.

자연의 위력앞에 한때 무력했지만 재해를 극복하는 위대한 사람의 힘이 발휘되고 있는 현장.자원봉사자들과 재해대책본부측은 인력과 장비.생필품 등이 태부족, 복구작업과 수재민 구호에 큰 애로를 겪고 있다고 한다.

온 국민의 힘과 정성이 결집돼야 이 막막한 '수재의 터널'을 벗어 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대목이다.식수.쌀 등 기초생필품, 방역과 치료에 필요한 약품과 중장비 등 복구에 소요될 물품 모두를 챙겨 서둘러 보내자.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곤경과 위기에 처할 때마다 힘을 합쳐 슬기롭게 극복했다. 그래서 영광과 환희를 맛보았다.지난 6월 월드컵때의 5천만이 하나가 돼 '대~한민국'하고 외쳤던 무서운 응집력을 또 한번 보여 줄 절호의 기회이다.

이웃 아픔 따뜻이 감싸줘야

하늘을 뚫을 듯했던 그 함성(일치된 힘)이면 뚫린 하늘이 부린 몹쓸 심술(수재)도 단숨에 날려 원상을 회복할 것이다. 우리 이웃들의 아픔은 우리가 쓰다듬어야 하는 게 당연한 도리가 아닐까.

우리는 어릴적 배가 아플 때 어머니가 "내손은 약손"하며 배를 쓰다듬으면 복통이 깜쪽같이 사라진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이번 수마가 할퀸 상처와 고통도 '동포의 약손'으로 조속히 치유시켜 황톳빛 벌판에 희망의 새싹을 돋게 해야 한다.

조선실록에 따르면 당시 임금들은 태풍피해를 입은 백성들에 대한 온정이 각별했다고 한다.선조는 수해를 입은 고을의 공물(貢物)을 면제했고, 현종은 태풍피해가 극심한 제주도에 인접한 전라도에 명하여 쌀 5천섬과 각종 씨앗 1천500섬을 전달, 구제케 했다.

영조는 태풍에 밀려 중국까지 표류했다 돌아온 영광의 조졸(漕卒)을 접견, 돌아갈 식량과 저고리를 줬다고 기록돼 있다.아프고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왕으로서의 배려임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 수재민들에겐 국가로부터의 수직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동포들의 수평적인 따뜻한 도움도 절실한 시점이다.

유해석(편집1부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