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몰고왔던 거대한 하천 물줄기가 잦아들고, 마을을 뒤덮었던 황톳물이 빠지면서 건물과 도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원래 모습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뿐 눈 앞 풍경은 상처투성이였다.
도로와 제방은 제 위치조차 가늠할 수 없었고, 땅덩이와 건물이 통째로 휩쓸려간 자리에는 폭격맞은 잔해마냥 거대한 구멍만이 남아있었다. '루사 습격'이 끝난 3일째 김천 구성면 상좌원리의 모습이다.
복구의 삽을 뜨고 있는 마을에는 코를 찌르는 악취가 가득했다. 하수구에서 퍼낸듯한 시커먼 진흙더미가 마치 제방마냥 도로 곳곳에 쌓여있었다.
현재로선 복구라고 해야 고작 집안에 가득 쌓인 뻘을 치우는 작업 뿐. 그나마 안동 70사단 장병들과김천경찰서 전.의경들이 조기에 투입된 상좌원리는 불행 중 다행인 곳에 속한다. 도로가 끊긴 곳에는 헬기로 구호품만 실어나를 뿐 복구는 엄두도 못낸다.
상좌원리 옆을 흐르는 감천 건너편엔 미평3리가 있다. 두 마을 연결하는 다리가 떠내려간 뒤 미평마을을 완전 고립됐다. 3일간 꼼짝못하다가 그나마 감천 물이 어른 목에 찰랑거릴만큼 빠진 뒤 로프를 연결해 고무통에 물과 쌀을 실어나르고 있다.
"가재도구는 이미 다 포기했어요. 방이고 부엌이고 진흙이 가득차서 아예 발디딜 틈도 없습니다. 그나마 집 모양은 남아있느니 다행입니다"
4대째 상좌원리에서 살고 있다는 김두성(46)씨는 피난살이가 따로 없다며 한숨지었다. 담요 한장 깔고 자는 새우잠이나 며칠째 라면으로 떼우는 식사는 참을 수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두려움은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구성과 지례면은 도로 복구가 끝나면서 응급지원인력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지만 나머지 대덕.부항.증산 3개면은 이번 주말께나 통행이 가능할 전망이다. 구호품이 속속 도착하면서 라면과 연료.생수는 넉넉한 편이지만 정작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수건이나 옷가지, 담요들이다. 수인성 전염병 예방접종도 시급하다.
군인과 경찰들이 투입돼 복구를 돕고 있지만 중장비가 턱없이 부족해 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그나마 주민들에게 희망을주는 것은 제 일처럼 몸을 아끼지 않는 군인.경찰과 면사무소.김천시청 직원들.
"제발 정치인들 좀 오지 마라고 전해주세요. 왔으면 삽질이라도 한번 할 것이지 양복 빼입고 나와서 손짓만 하는 꼴은 더 이상 보기 싫습니다". 간신히 건진 부엌살림을 들고 나와 하천 물에 씻고 있던 한 할머니가 분을 삭이지 못해 울먹였다.
김수용기자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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