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1세기 미술의 방향성 제시

미술이 새로운 사회.정치적 담론을 만들어 내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표현방식은 어떻게 해야 하고,그 한계는 무엇일까. 독일의 중소도시 카셀에서 열리고 있는 '도쿠멘타(Documenta)11'은 21세기 미술의 방향성과 역할을 새삼 음미할 수 있는 자리였다.

5년마다 열리는 유럽 최고의 현대미술 전시회인 카셀 도쿠멘타는 11회째를 맞아 '세계화'와 '후기식민주의'를 주제로 잡았다.이번 도쿠멘타는 거대한 사회.정치적 주제를 미술전시에 적극 도입했다는 긍정적 평가와 과연 사회.정치적 주제를 미술이 떠맡아야하는지를 놓고 뜨거운 논란을 불러왔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총감독 오쿠이 엔웨조르(39)는 "미술은 미학일 뿐 아니라 이데올로기다. 미술은 뭔가를 도발시키고 세계와우리의 관계를 섞는 하나의 언어"라면서 철저하게 전시 형태를 그 주제에 맞췄다.

솔직히 관람객이 제대로 소화하기 어려운 주제였다. 전세계 116명의 유명 작가와 그룹이 참여한 작품들은 미술적 감흥을 나타내기 보다는,작가 자신의 이데올로기나 메시지, 사회고발 등을 표현한 것이 상당수였다. 표현방식도 비디오.영화.사진 작업이 절반을 훨씬 넘었고, 비디오 설치작업이나 순수 회화작업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또 카셀의 전시회가 다섯번째 플랫폼(승강장)이라는 명칭에서 보듯, 지난해 3월부터 빈, 베를린, 뉴델리, 산타루치아, 라고스 등에서세미나, 토론회, 현장답사 등을 통한 이론적 정지작업(네차례 플랫폼)을 거치는 파격적인 시도가 있었다.

재불화가 이영배(47)씨는 "이번 도쿠멘타는 사회.정치적 주제를 미술 안에서 끌어내기 보다는, 미술 밖에서 대중과 친화력이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표현방식이나 전시형식보다는 주제전달에 무게중심을 둔 전시회라는 설명이다.

다섯곳의 전시공간에서 열린 올해 도쿠멘타는 팔레스타인인의 슬픔,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문제, 카리브해 인디언의 슬픈 역사, 아프라카의 사회주의 등 제3세계 문제를 다룬 작품(주로 영상)이 많았다. 물론 서구적 글로벌리즘, 환경문제, 산업화 등에 대한 소재도 빠지지 않았다.

한국작가는 단 한명도 초대되지 않았지만(반면 일본 2명, 중국 2명, 인도 2명 참가), 한국을 소재로 다룬 작품도 있었다. 미국의 앨런 시큘러는 '유럽의 70년은 한국의 7년과 같다'는 제목으로 전시장의 세벽면을 대기업 현대와 울산의 이미지로 채워 초고속 경제발전을 이룬 한국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봤다.

명료하지 않은 전시주제, 수많은 관람객, 대중적인 작품 등으로 특징되는 광주비엔날레와 달리, 카셀 도쿠멘타는 미술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해준다는 점에서 여운이 꽤 남는 전시회였다. 9월15일까지 계속된다.

카셀=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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