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림이야기-권력의 정당성과 예술관

부당한 권력과 그렇지 않은 권력이 미술을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 몇가지.먼저 아돌프 히틀러(1889∼1945)의 18세 때 얘기다.

그때만 해도 순진무구(?)한 청년이었던 히틀러는 빈의 미술학교에 두차례나 떨어지고 화가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림엽서나 광고그림 등을 그려주며 생활을 꾸려나가던 그는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에 입대,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한다.

1930년대 집권한 히틀러는 그당시 사회 모순과 인간정신을 강렬한 색채와 형태로 나타내던 독일 표현주의를 '퇴폐미술'로 낙인찍어 작품을 몰수하고 불살랐다.

대신 '범게르만주의'에 맞다는 이유로 수백년전에나 유행하던 고전풍의 그림을 최고예술로 극찬하고 후원했다. 예술 파괴자로 유명한 전쟁광(狂)이 한때 화가지망생이었다는게 아이러니다.

두번째 얘기. 독재권력의 문제를 아이들의 시각으로 다룬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년)'에 나오는 부분이다. '미술실기시간만 되면 한병태는 두장의 그림을 그려야 했는데, 한장은 엄석대를 위한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공부를 잘하는 예닐곱의 아이들이 엄석대를 위해 한 과목씩 돌아가며 시험지를 바꿔서 제출하는 행위와 등가를 이룬다…' 미술의 가치(?)를 아는 독재자였던 모양이다.

세번째 얘기. 미술평론가 윤범모씨의 '미술관과 대통령(1993년)'에 나오는 글이다."1986년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 개관식에 갔을 때의 일이다.

초청장에 비표가 없어 입장을 거절당했다가 미술관측의 보증으로 겨우 개관식에 참석하게 됐다.원로미술인들이 의자도 없는 큰 방에 선 채로 한시간 이상 감금당하다 시피 갇혀 있었는데 그제서야 전두환 대통령이 위세당당하게 들어왔다.

경사스런 날이마냥 얼음장 같았다. 각하의 말씀은 더욱 황당했다. '여러분을 위해 이 미술관을 지어준다'는 다소 거만한 표현의 연설이었다". 권력자가 주인이고, 미술인이 들러리 취급을 받고 있음을 본다. 과연 요즘은 그때에 비해 크게 나아졌을까.

그의 얘기는 계속된다. "오래전 파리에서 국제미술견본시장(FIAC)을 구경하는데 누군가 내 옆을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자세히 보니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이었다. 미테랑 일행은 조용히 관중속에 파묻혀 작품을 관람했다.

작품을 구경하는 관객을 방해하지도 않았고, '길 비켜라'식의 호령도 없었다. 그도 그저 평범한 관람객 중 하나였다".권력자의 사고방식과 그 나라의 문화수준은 비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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