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밭전망대 다향각. 그 곳에 서면 발아래에서부터 산등성이 너머까지 온통 녹색의 파도가 굽이친다. 조심스레 한발을 녹색 바다에 담그면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초록의 상쾌함이 발끝부터 머리까지 그대로 전달된다. 답답함도 사라진다. 그래서 계절과 상관없이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일까.
전남 보성은 차밭 천지다. 그중에서도 보성에서 18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7㎞를 더 내려가면 만나는 대한다업의 '보성다원'(보성읍 봉산리)이 규모가 제일 크다. 8월말 늦은 오후.
흙길 양쪽으로 도열한 삼나무가 기자일행을 먼저 반긴다. 아침 안개를 헤치고 걸으면 환상적일 것 같은 운치있는 길이다.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은 삼나무 사이로 들어서자 금방 어두워진다. 흐린 날씨 탓이다.
해발 350m 산 전체가 차밭
한 뼘의 하늘도 보여주지 않던 삼나무 숲길을 빠져 나오자 바로 차밭이다. 차밭은 숨듯 삼나무 숲 뒤 해발 350m 오선봉에 자리잡고 있다. 90㎝쯤 되는 키에 때로는 직선, 때로는 곡선으로 일렬로 도열해있다. 바로 앞에서 시작된 선은 구불구불 골을 건너고 산을 건너 산등성이를 따라 등고선을 그려놓았다.
초록 차밭과 삼나무, 산 중턱을 감싼 구름이 절묘하다. 이른 봄 새순이 돋을 때의 연둣빛 차밭도 좋지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맘때의 차밭도 그에 못지않다. 굳이 카메라 앵글을 맞출 필요도 없다. 아무 곳이나 보고 셔터를 눌러도 작품사진이 된다.
그 뿐이랴. 이곳엔 절경도 있고 느낌도 있고 배움도 있다. 모든 일에 삐죽삐죽 잘 튀어나오는 모난 사람.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곡선만 보고도 둥글둥글 굴러가는 세상사를 배운다. 베풀 줄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 차밭을 빙 둘러싼 삼나무에게서 남을 보살피는 미덕을 배운다.
차밭 사이로 난 나무계단을 올라서 산등성이 하나를 넘어서자 눈에 익은 풍경이 펼쳐진다. 삼나무 가로수가 인상적인 구불구불 비탈길. 자전거를 탄 수녀가 비구니를 태우고 가던 한 이동통신회사의 TV광고에서 본 그 길이다.
은은한 香 커피마니아도 반해
은은한 녹차향기에 끌려 들어간 곳이 차밭 아래에 있는'녹차방'. 이미 차밭에서 온몸이 녹색으로 물든 터라 차 맛이 별다르겠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다. 커피 향에 익숙한 사람들까지 녹차마니아로 돌려놓는다. 가격은 1인당 1천000원.
"차나무는 수분이 많이 필요한 곳에서 자랍니다. 그러면서도 뿌리가 곧게 자라 특히 배수가 잘돼야 하기 때문에 산간에다 차나무를 심는 겁니다".
왜 하필 가파른 곳에다 차밭을 일구냐고 의아해하자 공장장 주용로(41)씨가 일러준다. 보성다원은 30만평 규모의 1, 2다원에서 매년 120t 가량의 차를 수확한다. 주말엔 보성군청에서 관광도우미가 안내를 나올 정도로 많이 찾는 곳이다.
차잎을 따는 일손들도 대부분 나이든 사람들. 주씨는 차나무 재배지의 평지화와 차잎 수확 기계화가 싼 가격에 녹차를 보급하는 관건이 될 것이라 한다. 대한다업㈜ 보성다원 061)852-2593.
18번 국도를 따라 봇재를 오르면 이곳 말고도 다원이 많다. 국도 주변은 곳곳마다 녹차 무료 시음장을 마련해두고 있다. 봇재 꼭대기에 있는 다향각은 굽이치는 차밭을 한눈에 조망하는 전망대다.
다향각을 지나면 보성만에 자리한 율포해안. 차밭에서, 차방에서 녹차향에 취했다면 이번엔 해수·녹차온천탕에서 온몸으로 녹차성분을 흡수해보자. 녹차 농축액과 암반해수를 이용한 온천욕이다. 요금은 5천원(어린이 3천원). 061) 853-4566.
글.사진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주변 가볼만한 곳=보성에서 2번 국도를 따라 순천방향으로 달리면 벌교가 나온다.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였던 벌교엔 홍교, 소화다리, 옛 금융조합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벌교에서 857번도로를 따라가면 순천 낙안읍성. 7만평에 이르는 마을에 조선조 성곽과 동헌, 초가가 원형대로 보존돼 있고 108가구가 지금도 살고 있다.
차밭에서 보성을 지나 18번 도로를 따라 북상하면 문덕면이다. 이곳 출신인 서재필 선생을 기념하는 기념공원과 국내 최대규모의 조각공원이 볼 만하다. 이곳서 좌회전해서 죽산리에 이르면 백제고찰 대원사가 있다.
다른 절과 달리 경내에 연못이 많다. 극락전앞 나무에 걸쳐놓은 초대형 염주가 눈길을 끈다. 작년 7월 개관한 티벳박물관(www.tibetan-museum.org)은 일부러라도 들러볼 만한 곳. 대원사 주지 현장 스님이 15년 전부터 모은 600점이 넘는 티벳 미술품을 상설 전시한다. 대원사 아래에는 군립 백민미술관도 있다.
◇맛집=율포해안의 가을은 전어와 함께 온다. 전어를 냉동했다가 포를 떠 내는 횟집이 많다. 한 접시 2만원선. 대한다업내 차목원에선 녹차잎을 먹여 기른 육류가 특징. 삼겹살 1인분 5천원, 갈비찜 1만원, 녹차수제비 5천원.
◇가는 길=대구~구마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 순천IC~2번국도~보성읍~18번국도~대한다업 보성다원~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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