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고 있다. 대낮에는 아직까지 삼십 도를 오르내리지만, 휴일 교외로 나가보면 해바라기는 이미 힘 잃어 고개를 숙였고, 그 해바라기의 화신인 듯 정신만 반짝이는 잠자리의 투명한 날갯짓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여름이라는 어휘가 퇴색되고 가을이 왔다는 느낌을 갖지만, 여름과 가을은 다른 몸이 아니다. 우주라는 한 몸이며 그 몸에 스며드는 변화이다. 우리는 지금 그 변화의 경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어느 작가는 "여름은 샹들리에, 가을은 등롱(燈籠)"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우리 인생이 재미있는 것은 죽는 순간 죽음의 실체를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듯, 어떤 존재나 현상을 잃거나 지나가는 그 경계의 순간 그 대상과 현상이 가장 순수하고 절실한 느낌으로 다가선다는 아이러니 때문이다.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추방될 때 그 경계의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의 표정들이 어떠했을까 상상하는 것도 참 인간적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TV에서 본 풍경이 떠오른다.
뜨겁고 화려했지만, 수마가 휩쓸고 간 여러 지역 사람들의 절망적인 몸짓도 잊혀지지 않는 여름의 한 모습이다. 삶의 터전을 유린당한 자들의 말과 눈물과 침묵들. 그들은 하루아침에 따뜻했던 일상에서 내몰린 채 폐허의 절망으로 참담해 하는, 경계에 선 사람들이다.
그들의 눈물은 행복했던 과거에의 아쉬움과,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절망의 표현이다. 공든 탑도 무너진다는 말을 절감하는 순간이 아닐까. 내 탓이 아닌 다른 무언가의 잘못으로 왔던 길을 다시 가야 할 때 인간은 절망하는 법이다.
여러 차원에서의 대책과 도움의 손길이 있겠지만 그것이 그들의 절망과 피해를 근본적으로 치유하고 감당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외부의 도움도 긴요하겠지만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 자신들의 삶을 세우는 의지이며 새로운 출발의 다짐인 것이다.
지금의 눈물이 절망했기에 아름다웠다는 인간 승리의 진주로 승화되는 그 날까지 그들이 새 힘과 희망을 가지도록, 간절한 바람의 화살 하나 허공을 향해 쏘아올린다.
김영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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