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아파트값은 평당 1천만원, 강남은 평당 1천500만원 이상으로 뛰었다고 한다. 집은 무엇인가? 일전에 나는 집 안에 채소도 좀 가꾸면서 살고 싶어 "주택으로 이사가자"고 남편을 떠보니, 남편은 도둑 문제도 있고, 주택은 영 팔리지도 않는 형편이라고 했다.
나는결혼하고 3년만에, 은행융자도 내고 해서 그 당시는 변두리인 서부주차장 맞은편 송현동에 집을 장만했다. 나는 원래 '꼭 내 집이어야 하나. 전세도 당연히 권리가 있는데' 하는 배짱을 갖고 있었지만 막상 내 집을 갖고 나니 신바람이 났다.
대지 64평, 건평 25평의 집은 뒤로 바짝 붙여 지어 많은 나무들이 있었고, 또 갖다 심었다. 키가 큰 꽃사과나무와 목련, 모과나무를 비롯해서, 라일락, 박태기나무, 우리집 아이들이 꿀을 빨아먹던 골담초, 하얀 줄장미, 산수유.... 이사든 첫해에는 거기에다 수세미, 조롱박,나팔꽃까지 마구 올려 흡사 지리산에 들어온 것처럼 무성했다.
그리고는 한두 해 지나 나무를 옮겨 심어 정원의 한가운데 공간은 비워두어 아이들과 함께 줄넘기를 하거나 배드민턴을 쳤다.초가을이면 나팔꽃에서 아침마다 뛰어나오던 "안녕하셔요"라는 말들, 한 개만 따 먹어도 배가 부르던 거봉.
늦가을의 노란 모과, 대문간에 사다리 놓고 올라가 따던 구기자, 세든 사람이 두고 간 담 밑의 참나무덩치에서 따먹던 버섯, 목련나무 밑에 평상을놓고 즐기던 대화들, 비둘기가 집을 짓던 처마 밑 창틀 위 공간. 그래서 석류꽃이 피고 옥수수가 푸르게 잎을 드리우며 옥잠화에 흰 꽃대가 올라갈 쯤이면 나는 내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의 여선생님들을 초대해서 간단한 점심 식사를 즐기곤 했다. 주택으로 이사가자
하지만 나는 아이들 학교문제로 그 집을 떠나게 되었다. 내가 여자고등학교 교사였으니, 마침 내 딸이 내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 배정받을까봐 이사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침 분양 받아 세를 놓고 있던 수성구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25평에서 50평의 공간으로 겨우 4 식구가옮긴다는 것은 부끄러웠지만 신분이 상승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구들을 새로 사는 나를 들뜨게도 했다. 그 경솔함에 내가 사용하던 자줏빛 옻칠의 단단한 화장대를 조카 준다고 두고 온 것이 어긋나 잃게 된 것을 나는 두고두고 후회한다.
빈 공간의 가구 배치는 내가 할 수 있는 건축이다. 남편의 생일날 음식상을 물리고 나면 어린 나이의 올망졸망한한 여러 조카와 질녀들이 술래잡기를 한다고 방마다 뛰어다닌다. 농과 문갑 사이, 책상과 문갑이 만나는 벽 모서리, 침대 뒤, 책장 옆 옷걸이 뒤에서 막 날쌔게 뛰어나온다. 문갑 뒤에서 뛰어나올 때는 나의 달항아리 백자가 깨질까봐 정말 놀란다. 우리집은 동선이 좀 길고 숨을 곳이 많게 가구 배치를 늘어놓았다. 아파트가 나는 좋아
이제 우리집 아이들은 다 자라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학교 근처로 가겠다고 해서 일전에 이사를 했다. 다가구주택의 깨끗한 이층집은 남향집이었는데, 옆집의 옥상이 꽃밭천지였다. 얼굴 납작한 단국화와 나팔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아침에는 하늘빛 달개비꽃이 빤히 눈뜨고 내다보고 있었다. 삭막한 아파트에 살던 내 딸들이 바라보는 정원을 갖게 된 것이다. 빗소리도, 벌레소리도 이제 크게 듣게 된 것이다.
거실 겸 부엌 정리를 끝내고, 큰방에 중요한 짐들을 정리하고 나니, 남은 허드렛짐은 작은방에 넣게 되었다. 조립식 옷장을 설치해서 제철 아닌 옷을 걸고,그 옆에 손때가 묻은, 노란 누비천의 조립식 옷장에는 이불들을 쌓고, 창쪽 벽에는 TV, 큰애의 책 박스 몇 개, 옷걸이 하나를 놓고 나니, 큰 보료하나 깔 공간만 남았다.
내가 그리던 골방이 하나 탄생한 것이다. 어쩌다 우리 식구가 서울에서 다 모여 이 골방에 앉아 TV를 보게될 날을 생각하니, 여전히 좁은 공간은 가족을 단란하게 묶는데 한몫을 한다고, 하필 이 작은방에 TV 설치를 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장길로 내려가니 전철역까지 10분 걸린다는 것이다. 만족한다는 뜻이다. 집이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집은 삶이고, 집은 바로 그 사람을 나타낸다. 정서를 안정되게 하고, 추억을 많이 만드는 집이 좋은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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