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가위 시댁풍조 달라졌네

명절 풍경이 바뀌고 있다. 도회지에서 찾아온 아들 내외와 손자들, 동구 밖까지 나가 아들 내외를 맞이하는 시어머니, 전을 붙이고 송편을 빚는 며느리, 연신 웃음을 터뜨리는 손자들, 사촌에 육촌, 팔촌 친척까지 모이던 제사…. 명절하면 떠오르던 이 풍경은 더 이상 오늘날의 명절 모습이 아니다.

아들만 둔 부모들에게 명절은 눈치와 썰렁함이 혼재된 행사다. 명절 전날 밤늦게 도착한 멀리 사는 아들 내외는 차례가 끝나기 무섭게 떠난다. 길이 많이 막히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 사는 아들내외도 사정은 비슷하다. 명절 전날 얼굴을 비쳤다가 명절 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곧장 떠난다. 며느리의 친정으로 가는 것이다. 결혼한 아들만 둔 노부모의 명절은 그래서 썰렁하다.

시어머니인 한모(62.대구시 수성구)씨는 "아들 내외가 올 때보다 떠날 때가 더 반갑다"고 말한다. 명절 스트레스에 일그러진 며느리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눈치 없는 남편이 아들 부부를 늦게까지 잡아 두려하면 며느리 눈치 때문에 죽을 맛이라고 털어놓는다.

"집안이 편하려면 어쩔 수 없어요. 차례 끝내고 괜히 뭉그적거리다가는 부부싸움 나기 딱 좋죠". 제사 끝내기 무섭게 처가로 향한다는 40대 직장인 양모씨의 넋두리는 이제 우리의 새로운 명절 세태로 자리잡았다. 며느리들은 제사를 끝내고 부엌일이 대충 마무리되면 일초라도 빨리 친정으로 떠나고 싶다고 말한다. 시댁은 어쨌거나 불편하단다.

이 때문에 요즘 남편들은 자기 형제보다 처가 쪽 동서들과 명절 연휴를 보낸다. 그래서 딸부자 집의 명절은 딸과 사위 외손자들이 몰려와 시끌벅적하다. '세련된 시어머니' 소리를 들으려면 시집간 딸들이 도착하기 전에 며느리를 친정으로 보내 편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정모(직장인 며느리)씨는 "평소 아이들을 주로 외가에 맡기다 보니 아이들도 외가를 편하게 생각해요. 친가에 가면 주눅들어 있다가도 외가에 가면 신바람을 내요". 모두 결혼한 정씨 자매들은 시집에서 차례를 끝낸 후 친정으로 모인다. 물론 친정 어머니는 차례가 끝나는 대로 올케들을 그들의 친정으로 미리 보낸다.

"올케 없는 집에서 오랜만에 만난 여자 형제들끼리 친정 어머니와 맛있는 거 해먹고 종일 드러누워 쉬는 게 좋아요". 정씨는 대부분 며느리들이 원하는 명절 풍경일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차례를 끝낸 후에도 친정으로 가지 못하는 며느리들은 죽을 맛이다. 게다가 시집간 시누이들까지 들이닥치면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김모(며느리·전업주부)씨는 "명절날 찾아오는 시누이들이 정말 밉다"고 털어놓는다. 선물을 챙겨와도 하나도 반갑지 않다며 울상을 짓는다. 친정을 찾은 시누이들도 뾰로통한 올케 얼굴이 반가울 리 없다. 그래서 친정 어머니가 올케를 얼른 자기 친정으로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채모(전업주부)씨는 "명절 풍경은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자들이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 조상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생길 리 없다는 것이다. 차례를 끝낸 며느리들이 바로 친정으로 가는 대신 그 자리를 시집간 딸들이 채우는 명절 풍습이 대세로 정착되고 있다. 여성상위가 명절세태에서도 맹위를 떨치는 시대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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