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비-(10)국운이 돌아오고 있다

국운(國運)이란 말은 오늘날 우리에겐 왠지 시대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고 불합리하거나 모호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국운은 옛 선비들에겐 익숙한 말이었다. 국가 공문서나 상소문 가운데 국운이 왕성해 태평성대를 구가한다거나,국운이 다해 임금과 백성이 곤경에 빠져 있다는 표현이 많았다.

국운이란 어떤 사람이 기운이 세다거나 약하다고 하는 경우처럼 국가의 기운(氣運)을 뜻하는 것이라면 이 시대에도 거부감을 느낄 필요가 없을 터인데 왜 불합리하거나 모호한 것처럼 이해되는 것일까.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언어의 속성때문인지 아니면 민간전승의 개인운세 같은 의미와 혼동되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말뜻 그대로 나라가 뻗어나가는 힘이라고 이해한다면 현시대에도 사용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운이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기운이 세지고 있다는 말인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가의 경제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말이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국운이 돌아오고 있다는 이야기는 올 봄 5년전 금융위기로 침체상태에 빠졌던 아시아의 경제가 회복조짐을 보이는 가운데중국이 WTO체제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잇따라 국제금융기구들이 한국을 97년 환란때 바닥났던 외환보유고를1천억달러 이상으로 채운 금융위기극복 모범국으로 치켜세우며 신용등급을 올리자 한껏 고조됐다. 때마침 서방언론들도 일본의 장기침체와 미국경제의 불안한 회복세를 우려하며 아시아 경제권에 관심을 돌리자 국내 일부 언론에서는 한·일경제 역전론을 거론하면서까지 낙관론을 부추겼다.

한 언론은 성급하게도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일본을 앞질렀음을 들어 일본이 한국경제를 배우고자 한다고 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뒤이은 월드컵 4강제패의 신화와 겹쳐 경제4강 달성의 의지로 나타나면서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웬걸 미국의 하반기 경제회복이 재침체(double dip)상태에 빠졌다는 분석과 함께 엔론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회계부정사건이 터지면서 그 여파로 우리의 환율이 내려가고 외국인 주식자본이 빠져나가자 갑작스레 경제위기론으로 돌변했다. 왕성하던 국운이 몇 개월만에 쇠퇴한 것일까.

국운이 돌아오고 있다는 판단이나 전망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좋은 것이긴 하지만 이러한 몇 개월짜리 국운이라면 국운이랄 것까지도없고 믿음직스러운 것이 못된다. 그 보다는 차라리 인문학 분야서 내세우는 국운도래론이 휠씬 확실해 보인다.

국문학자 조동일 교수는 그 스스로 국운도래란 표현은 쓰지 않았지만 문명사적인 차원에서 오래전부터 국운도래를 주장해 온 사람이다. 그는 세계역사는 고대나 중세기 각 시대마다 선진과 후진문명이 교체돼 온 역사이며, 지금은 한계에 이르러 다른 문명권의 문화파괴 지구환경파괴를 비롯 가족파괴 남북빈부격차심화 등 인류전체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서구 근대문명의 횡포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길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고 역설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과제는 현재의 후진인 여러 다른 문명권에서 주도하는 것이 당연하며 우리가 이 일에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했다. 조교수는 새로운 길을 찾는 구체적 작업으로 '한국문학통사'에서 출발, 아시아와 세계각지 문학의 비교연구를 그쳐 '세계문학사의 전개'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통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정치와 경제의 우위가 시간이 지나면 자만과 오만으로 무기력해져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역전되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드러내 보여주었다.

고대에 뒤떨어졌던 이슬람이 중세기 가장 앞선 문명권으로 부상하고, 중세기 주변부에 머물렀던 영국과 일본이 근대화엔 선두주자로 나선 것이 다 그 때문이었다. 한국은 중세후기 중심부 중국보다 문화수준을 더 높일 수 있다고 자만하며 중세에 머물렀다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조교수는 선진과 후진의 관계가 이처럼 역전되게 되는 것은 경제나 정치의 성장 등 외면의 발전을 지나치게 추구하게 되면 사상이나 의식 등 내면이 황폐화 돼 일어나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말한다.

그리고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한국이 선·후진 교체를 주도할 수 있는 이유는 일본은 근대의 승리에 도취되어 아직도 근대 청산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중국은 중세의 세계제국 영광의 꿈에 젖어 한문문명권의 유산을 온통 자기네 민족문화라고 우기고 있어 시대의 흐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과 다르게, 한국은 식민지에서 해방됐으나 다시 민족분단의 수난을 겪고 있어 근대극복을 위해 분투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며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학을 예증으로 삼아 철학·언어·종교·정치·사회사와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새로운 문학연구방법을 통해 후진이 선진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도와 지침을 밝히는 조교수의 작업은 희망의 철학이 아닐 수 없다.

조교수는 이 모든 작업의 원리는 조선의 옛 선비를 비롯한 동아시아인들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재창조한생극론(生克論)이며, 이 생극론은 서로 한쪽으로 치우친 중세의 순환론과 근대의 발전론을 하나로 합쳐 상극(相克)이 상생(相生)이고 상생이 상극이 되게 하는 것이어서 막힌 길을 활짝 열게 한다고 했다.

일본경제의 장기침체와 이와 유사한 과정을 밟지 않을까 우려되는 불안한 미국경제의 현실을 생극론의 관점에서 비춰보면 그 지평이 보다 잘 이해된다.경제동물로 불리며 자기나라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해 온 일본, 세계를 제패한 최강국으로서 오만방자한 미국이 내면이 황폐화 돼 내리막길에들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과 중국의 부상은 그 반대의 경우로 보인다. 최근들어 일본이 세계영향력의 쇠퇴로 중간국가로 밀려났다거나상업문화의 지나친 지배로 미국의 문화가 몰락했다고 하는 등의 담론은 후진이 선진이 되고 선진이 후진이 되는 생극론의 이치를 새삼 되새겨 보게 한다.

하지만 후진이 선진이 되는 것이 필연적인 이치라 해서 가만히 앉아있어도 찾아오는 것은 아니며, 축적된 창조력으로 발상의 대전환이 따라야 한다. 승리나 소생은 그 가능성을 정확하게 알아내 실제로 역전의 노력을 할때 이루어 지고, 망하는 쪽의 경제논리를 받아들여 이용하기만 해서는 몇 달짜리 국운 전망만 할 수 있을 뿐 역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절대자인 신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고 하는, 고대인으로선 납득이 잘 안되는 괴이한 주장을 펴서 이집트 페르시아 등 선진문명을 무너뜨렸으며 영국인은 중세의 열세를 중세의 방식으로 회복하기를 단념하고 동력을 사용해 공장을 돌리는 전혀 엉뚱한 발상으로 세계제국이 되었다.

그런데 발상의 대전환을 하기위해서는 역사가 천지만물과 함께 돌아가는 근본이치에 대한 통찰이 요구된다. 여기엔 옛 선비를 비롯한 선조들이남긴 문화유산과 지혜가 절대적인 지침이 된다. 끝

최종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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