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벼랑 끝 한우산업-(9)위기는 곧 기회

"지금부터가 중요한 고비입니다. 정책 일관성과 축산농의 인식전환, 왜곡된 유통구조개선으로 쌀과 함께 우리 민족 대표 농산물인 한우를 지켜내야 합니다".

현재의 한우산업이 더 물러설 곳이 없는 최악의 상황인 만큼 더 이상 버려둘 수는 없다는 데 한우관계자들의 의견이 일치됐다. 지금까지 거론된 악재는 끝없이 많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의견도 만만찮다. 한우살리기에 대한 의견을 모아봤다.

△왜곡구조 개선

전국 한우협회 대구경북지회는 지난해 9월 한우의 날 행사때 수입쇠고기의 한우 둔갑판매 업소를 적발한 농산물 풀질관리원 경북지원 직원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남호경 지회장은 "값싼 수입고기가 값비싼 한우로 둔갑 판매되는 잘못된 유통구조만이라도 개선되면 한우가 살 길은 찾을 수 있다"면서 지속적이고 강력한 단속을 요청했다.

농관원은 7월까지 264건의 국산둔갑 농산물을 적발했는데 이중 육류는 71건이지만 절반인 37건이 수입고기의 한우둔갑이었다. 이처럼 쇠고기 취급업소의 한우둔갑 문제는 심각하다. 정육점은 원산지 표시와 기록의무제 도입으로 단속이 가능하다.

그러나 전국 60만곳이 넘는 식당에서의 둔갑 속임은 단속도 적발도 할 수 없기 때문. 순수 한우의 자급률은 20%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수입육을 쓴다고 당당히 밝히는 곳이 많은 실정.

농림부와 한우업계는 식당에서의 원산지 표시를 강력히 요구하지만 보건복지부에서 거부하는 바람에 실시되지 않아 결국 소비자는 가짜 한우를 비싸게 사먹거나 소비자의 한우 입맛을 수입고기 입맛으로 대체, 한우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고 정규성 축산유통연구소장은 분석했다.

한우둔갑 판매의 강력한 단속과 식당에서의 원산지 표시 의무제 같은 제도적 뒷받침 마련이 절실하다는 것이 축산업계의 숙원이다.

△급식체계 개선

국내의 초·중·고 급식 시장은 연간 1조7천억규모. 지난해 전국 1만109개 초·중·고 중 8천807개교가 급식을 실시한 것으로 교육인적자원부 조사결과 나타났다. 초교는 5천292개교중 5천286개교(99.9%)가 급식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교급식법은 '학교급식에서 소요되는 급식재료는 미국산만 사용'토록 법으로 제한한 미국과 달리 우리 농산물 사용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어 수입농산물에 무방비 상태.

또 1인당 1끼 급식비도 1천348원(초), 1천887원(중), 1천909원(고)에 그쳐 값비싼 우리 농산물, 특히 쇠고기 경우 한우를 사용하기 어렵게 만들고 수입농산물을 쓰도록 하고 있다.

지난달 대구의 한 육류 급식업체가 한우고기에 수입 쇠고기를 섞은 것을 대구지역 초·중 10여개 학교에 팔아 1억원이 넘는 부당이익을 챙겨 적발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여론. 상당한 물량의 수입 농산물이 급식에 들어가고 따라서 미래 우리 농산물 소비자인 학생들의 입맛이 수입농산물에 맞도록 길들여 지는 셈이다.

안동 황우촌 황화섭 대표는 "비현실적인 급식비에 맞출 경우 수입고기보다 3, 4배 비싼 한우고기나 우리 농산물을 어떻게 공급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결국 우리 어린이들이 한우고기를 멀리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북교육청 조춘화 학교급식담당은 "학생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선진국들처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급식경비를 지원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교육부의 급식 만족도 조사에서 음식의 맛과 위생·식당환경 등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가 만족하지 않은 반면 교사와 교장의 만족도는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도 잘못된 급식체계를 방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래 소비자들인 학생들의 입맛을 수입농산물에 뺏기지 않는 급식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에 귀 기울일 때가 됐다.

△계열화와 유축농업

200만마리의 사육기반 유지와 안정적 유통물량 확보를 위해서는 송아지공급의 안정화, 이를 위한 비육·번식 전문화와 계열화 사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그동안 정부의 규모화 정책으로 10마리 미만의 영세농은 급격히 몰락하고 50마리 이상 농가는 급격히 늘어나는 대형화가 계속됐다. 그러나 소값 변동과 송아지 공급 불안정으로 사육기반이 붕괴, 200만마리 사육정책은 휴지조각이 됐다.

따라서 대농가나 한우관련 단체·기관에서 송아지 번식을 위한 소농가의 자금지원과 송아지 되사기와 같은 안정적 공급체계를 확보하는 계열화사업이 필요하다고 4천400여마리를 키우는 영농법인 안동민속한우 권혁수 대표는 주장했다.

강원대 동물자원과학대 이병오 학장도 "소사육은 물론 사료의 조달, 쇠고기의 공급을 아우르는 수직적 계열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한 관련 기관이나 단체, 업계 등의 계열화사업 발전협의회 운영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계열화가 이뤄질 경우 소규모 영세 한우농가도 기존 축사를 활용할 수 있고 소분뇨 등 부산물을 사용, 화학비료를 대체함으로써 친환경 농산물 생산이 가능해진다는 것. 이는 또 농가의 소득향상으로 이어지는 유축(有畜)농업의 활성화로 연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통에도 계열화도입이 절실하다고 경북 군위의 (주)동아LPC 영업부 한정수 부장은 주장했다. 한 부장은 "한우도축에서 가공·포장까지 일관화 작업을 갖춘 공장에서 농가와의 계약을 통해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 좋은 쇠고기를 시장수요에 맞춰 공급할 수 있어 공장과 한우농가 모두 이익"이라고 계열화의 장점을 들었다.

영농법인 안동민속한우 경우 소사육 자금지원을 받는 대신 연간 3천600~3천800여마리를 LG유통의 전국 68군데 판매망에 납품하고 있다. 이같은 안정적 판로 확보로 안동민속한우는 사육에 전념하고 LG유통은 물량공급 문제를 해소하는 등 서로 이익을 본다고 권 대표는 밝혔다.

△광역 브랜드화와 홍보강화

수입쇠고기와의 차별화는 브랜드화를 통한 한우만의 고객확보가 시급한 과제이나 아직 브랜드화가 활착되지 못하고 있다. 전국의 한우 브랜드는 153개이나 '고베비프'(일본) 등과 같은 전국적 브랜드는 없다시피하고 브랜드별 차이도 크지 않다는 것이 공통적인 지적이다.

육질 1등급 출현율은 지난 98년 15.3%에서 지난해 29.9%로 높아졌다. 그러나 농산물 품질관리원의 품질인증을 받은 곳은 전국 14군데 정도에 그치고 있다.

대구경북한우조은 김치영 상임이사는 "좋은 고기 생산과 함께 브랜드의 광역화가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한 적정규모 이상 사육두수 확보가 필요할 것"이라 했다. 또 한우조합을 이를 위해 300여 회원농가에서 2만여마리의 한우를 확보, '한우왕'이란 브랜드로 광역화에 나설 계획이라고 김 이사는 덧붙였다.

한우 홍보문제도 개선돼야 할 부분. 영남대 자연자원대학 최창본 교수는 "쇠고기 수입업체들이 월드컵과 추석을 앞두고 대대적인 판촉에 나서고 수입 쇠고기 취급업자들을 선발, 외국연수를 보내는 등 치열한 마케팅 전략을 편다"며 한우 홍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위한 한우 자조금도 시급히 조성돼야 할 것이라고 한우협회 남호경 지회장은 지적했고, 강원대 이병오 학장도 "수입육의 대대적인 홍보에 맞서 한우의 우수성 홍보와 소비확대를 위한 자조금 제도는 시급한 과제"라 동의했다. 이밖에 한우 DNA검사에 의한 우수 한우만의 사육과 번식체계도 서둘러 갖춰야 할 것이라고 영남대 자연자원대학 여정수 학장은 덧붙였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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