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디어의 창-드라마 '네멋대로…'의 여운-틀에 짜인 캐릭터 뒤집기

지난 5일 막을 내린 MBC 드라마 '네멋대로 해라'는 끝났지만 우리에게 남긴 것은 적지 않다. 우리는 드라마 첫 회만 보면 대강의 내용과 인물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랑에 목숨거는 여자, 야망에 가득 찬 남자 등등. 기존 대부분의 드라마는 사람들의 내면에 섞여있는 다양한 측면 중 한 가지를 극대화시켜 인물을 만들어낸다.

'네멋대로 해라'는 드라마의 정형화된 캐릭터를 뒤집었다. 미래(공효진 분)의 애인이었던 고복수(양동근 분)는 경(이나영 분)과 새로운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미래가 비련의 여주인공도 아니고 경이 독하고 나쁜 여자도 아니다. 오히려 미래와 경은 친해진다. 뇌종양에 걸린 복수는 불쌍한 시한부 인생이 아니라 비로소 삶을 진지하게 바라볼 줄 아는 귀여운 남자다.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 속의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또 '네멋대로 해라'는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감성을 잘 짚어냈다. 기존 트렌디드라마의 젊은이들은 24시간 사랑만 생각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일탈을 일삼는 역할, 지나치게 건실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자유롭지만 불안하다. 그 불안한 향기는 '네멋대로 해라'의 젊은이들에게서 고스란히 묻어난다. 꿈을 향한 열정이 강하지만 어딘가 상처 하나씩 간직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특히 징징대지 않는 점은 이 드라마의 미덕. 시한부 인생이란 극적인 상황을 놓고 시청자들에게 칭얼대지 않는다. "죽는게 뭐 별건가". 복수가 뇌종양이란 얘길 듣고 애인 경이 내뱉은 말이다. "뇌종양에서 사람이 나오네". 죽음을 직시하며 비로소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복수가 스스로에게 중얼거린다. 시청자들에게 같이 울어달라고 질척거리지 않아 그들 내면의 쓸쓸함은 더욱 도드라져보인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백미는 대사에 있다. 연기자와 등장인물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툭툭 던지는 말에 녹록지 않은 성찰이 들어있다."그 사람이 심장에 너무 깊이 박혀서 그걸 뜯어내면, 심장마비로 내가 죽어". 복수의 독백. "그 사람 없으면 평생 담배만 펴야지. 세수도 안하고, 밥도 안먹고, 음악도 안하고". 경의 혼잣말은 어떤 사랑의 고백보다 절실하다.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인물과 구도를 벗어버린 이 드라마에는 마니아가 많다. 홈페이지 '명대사 명장면' 추천코너에는 8천건 이상의 글이 올라왔고 인터넷 동호회도 많이 생겼다. '네멋대로 해라'는 김수현, 노희경 등 마니아층을 확보한 드라마 작가 대열에 새로운 이름 인정옥을 올려주었다.

드라마 '네멋대로 해라'는 연기자의 인기나 신데렐라 만들기 식의 뻔한 구조에 기대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를 계기로 평면적이고 일차원적인 드라마 인물에서 벗어나 입체적이고 풍부한 캐릭터가 많이 생겨나길 바란다.

드라마가 끝나도 고복수와 전경이 어느 작은 집에서 같이 살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버스를 타고 밤거리를 구경하고 서로에게 밉지 않은 잔소리도 해댈 것이다. 지하철 역 어디쯤에선가 그들을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것이 이 드라마의 힘이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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