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읽었던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화가 새삼스레 생각난다. 자신에게 도취된 돈키호테형의 인간, 귀가 얇고 잘못된 측근을 둔 처신으로 우스갯거리가 된 임금님. 임금만 아니었으면 시쳇말로 영락없는 왕따의 전형이다.
이 우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사슴을 보고 말이라며 권세에 아부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처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임금을 보고 대다수 사람들이 찬사를 늘어놓는 광경이 어쩌면 동서양 모두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리도 똑같은지…. 사람사는 세상은 다 그런가 보다. 이런 벌거벗은 인간사의 이야기가 과학의 발달로 현실로 다가온 느낌이다.
천을 관통하는 투시경의 개발은 부끄러운 곳을 가리고자 하는 의복착용의 기본목적을 근원적으로 뒤흔들어 놓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 투시경을 무력화시키는 신소재가 새로 개발되고, 이를 또 뛰어넘는 기기개발의 악순환. 승자 없는 개발경쟁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갈 것인지 그 추이가 자못 궁금하다.
마치 길로틴(사형대)을 개발했던 사람이 자신이 만든 그 성능좋은 개발품의 희생자가 되었듯, 좀 더 좋은 길로틴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인간만큼 어리석은 존재도 없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은 정신문화가 결핍된 상태에서 욕망에만 눈이 흐려진데서 생겨난 부산물이다.
잘못된 목적에 사용되어지는 이런 현대문명의 산물들은 결국 개발 당사자는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해악이 될 뿐이다. 너무 목표지향적이며, 빨리 목적지에 그것도 내가 도달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요즈음 우리들에게는 실로 많은 것을 되돌아 보게한다.
한 템포 늦추어 쉬어야 할 때는 반드시 쉬어가야만 한다. 어딜 얼마나 빨리가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지향하는 목적지는 어디며,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인터넷의 선진국이란 통계가 나올 때 마다 가슴 뿌듯함 보다는 거기에서 파생되는 여러문제를 생각하면 웬지 불안하고 허전한 생각이 가슴 한 구석에 스며드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기본을 알면 미래가 보인다는 표현만큼 가슴에 와닿는 말이 없다. 정신문화의 부재에서 만들어진 제품과 용도를 잘못 찾은 문명의 이기로 인해 벌거벗은 임금님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양대교수·디지털패션디자인학과 전병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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