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복구현장 순직 김천 부항면 고허평 담당 영결식

11일 오전10시 경북 김천시청.

자신의 생명이 꺼져가는 것도 모른 채 수마가 할퀴고 간 현장을 열흘씩이나 거의 뜬눈으로 지키다 결국 불귀의 객이 된 김천시 부항면사무소 고 허평(52) 총무담당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이날 허 담당과 공직생활을 같이한 부항면 사무소의 동료 직원들은 물론 시청 산하 전 공무원들도 잠시 일손을 놓았다. 느닷없이 찾아온 수마를 죽음으로 맞선 허 담당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하며 넋을 잃었다.

하지만 슬픔도 잠시. 김천시 공무원들은 목이 긴 장화를 신고 삽과 곡괭이를 들고 곧장 자신들에게 맡겨진 수해복구 지역으로 다시 되돌아가야 했다.

이들은 비가 억수같이 퍼붓기 시작한 지난달 31일부터 비상근무에 나선 이후 꼬박 열흘이 넘도록 속옷조차 제대로 갈아 입지 못하는 형편. 시청 재해대책본부와 면사무소 숙직실이 잠과 식사를 해결하는 집이 돼 버린 지 오래다.

구성면 사무소 직원들은 숙직실을 10여명의 노인 이재민들에게 넘겨주고 사무실 바닥에서 새우잠을 청하며 고단한 몸을 의지하는 신세.

한 공무원은 "사정이 이런데도 일부 주민들이 공무원들이 잘못해 수해를 입었다며 면사무소에 몰려와 몰아 세울 때는 당장 그만두고 싶다"며 말못하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요즘 이들은 아침 6시에 일어난다. 라면 등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자마자 자원봉사자 인력배정, 구호품 전달에 나서고 공사현장의 일머리를 틀어줘야 하는 등 하루종일 수해복구에 매달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밤 12시를 훌쩍 넘긴다. 파김치가 된 심신으로 좀처럼 숙면을 이룰 수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허 담당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대덕면사무소 김효윤(54) 산업계장이 과로로 병원에 입원했다. 게다다 지난달 공무원으로 발령을 받은 모 면사무소 여직원 이모(24)씨 역시 수해업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지난 2일 사표를 내버렸다.

직접 수해를 입은 직원들은 자신들의 집은 복구생각조차 못한 채 뒷전이다. 또 상당수 직원들은 수해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악취 등으로 인해 눈병.피부병에 시달리는 최악의 조건에서 묵묵히 복구작업에 비지땀만 흘릴 뿐이다.

김천시청 김진용(57) 행정지원국장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수해복구 작업을 완전히 마무리하기까지 또다시 허 담당처럼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할지 모를 일"이라며 긴한숨을 내쉬었다.

김성우기자 swki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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