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수위(水位)말뚝의 교훈

태풍 루사가 온 나라를 휩쓸고 간 다음날 "한밤중에 몸만 겨우 빠져 나왔심더…"라는 어처구니없는 스님의 전화를 받았다. 산사태가 일어나 법당과 후원이 완파되었다는 스님의 목메인 목소리가 수화기 저쪽의 다급함을 느끼게 했다.

지리산 실상사 백장암의 국보 제10호 '백장암 3층석탑' 조사를 태풍이 온다기에 서둘러 끝내고 하룻밤 절 집에서 묵고 가라는 스님의 청을 뒤로 하고 하산한 다음날이었다.

"조사해온 실측도면과 촬영한 필름이 아직 가방 안에 그대로 있고,조사가 지체되었다면 후원에서 하룻밤 묵었을 텐데…" 착잡한 심정이 들었다.

한편으론 절집에 계시는 스님들이 모두 무사하고 산사태로 완파되어 버린 법당을 그때 실측 조사해 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산사태로 석탑이 손상을 입지나 않았는지 걱정이 되었다.

태풍이 지나간 지 열흘이 지나서야 "고립된 절집에 군인들과 주민들이 올라와 묻힌 토사를 웬만큼 걷어내었다"는 연락이 왔다. 무너진 법당과 후원보다 아래쪽에 있는 석탑은 그나마 온전하다는 전언이다.

태풍 루사는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적지에도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전국에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피해가 엄청날 것이다. 사후복구에만 무원칙한 대응으로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재난방지 체계의 어이없는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한심하다.

수만 명의 수재민들이 생라면을 먹어야 하는 이판에 재해복구 순위의 기준이나 절차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제대로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차제에는 미리 자연재해에 취약한 문화유산을 다시 점검하고 사전대책을 세워 두 번 다시 이런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절실해서이다.

유학시절 일본 나고야항구 부근에서 살 때다. 초등학교 교문 옆에 1959년의사라호 태풍 때 바닷물이 뗏목과 함께 도시를 덮쳤을 때의 수위(水位)를 나타내는 어른 키보다 큰 말뚝이 하나 서 있었는데 새삼 그 말뚝이 무엇을 암시하고 있었는지 되새겨 보게 한다.

영남이공대학 건축과 교수/경북도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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