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화가들의 안식처이자 무덤이다. 화가라면 누구나 파리를 선호하지만, 웬만한 실력으로는 화랑에 그림 하나 걸 수 없는 곳이다. 이때문에 1천명이 넘는 한국화가 중 파리 화단에 조금이라도 이름을 알린 이는 손꼽힐 정도다.
그렇다면 파리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중견작가는 누굴까? 김창열(73) 이우환(66) 같은 대가를 제외하면 그 다음으로 곽수영(48) 황호섭(47) 이영배(46)씨가 아닐까.
이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대구 출신에 홍익대를 나왔다. 곽수영과 황호섭은 경북대사대부고를, 이영배는 영신고를 졸업했다.
곽수영의 아틀리에는 파리 근교 이시 레 물리노시의 소나무협회에 있었다. 20평 남짓한 자그마한 화실에는 그의 깔끔한 성격을 보여주듯 화구와 그림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그는 '인간'의 모호한 형상을 주로 그린다. 캔버스 표면을 흰색이나 옅은 회색으로 여러겹 덮은 뒤 날카로운 선(線)으로 형체를 만들어낸다. 눈 코 입이 없고 표정마저 없는 익명의 군상은 무척 쓸쓸하고 고독해 보인다.
그는 "지난 83년 파리에 와 온갖 고생을 했던 경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가 지난해 10월 서울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여행'이란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는데, 파리의 이방인이 돼 이상향을 찾아 나서는 자기 자신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황호섭의 아틀리에는 파리 근교 조앵빌에 있었다. 아틀리에에서 세느강의 지류인 마흔강의 아름다운 풍경이 내려다 보였다. 그의 아틀리에와 집이 부촌(富村)에 자리잡고 있는 것만 봐도, 그의 이력을 어느 정도나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갤러리 장 푸르니에(지금은 문을 닫았지만)사단의 일원이었고, 현재에도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캔버스 천에 운모와 석영, 금가루 섞은 물감을 튀겨 별들로 수놓아진 우주공간을 표현하는 것이 그의 특징이나, 요즘에는 전혀 다른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내년초쯤 서울에서 불두(佛頭)를 이용한 색다른 설치작품을 보여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영배는 파리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각광받는 작가다. 2년전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에 선정된 데다 지난해 '제1회 하종현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89년 파리로 건너간 그에게는 항상 '숯'이란 독특한 재료가 따라 다닌다. 숯을 이용한 설치, 캔버스, 사진작업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그는 얼마전 아틀리에를 소나무협회에서 파리 시내로 옮겼다. 내년 파리에서의 전시회를 앞두고 숯을 구울 수 있는 널직한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내년초쯤 청도 작업실(대산초교)에서 한동안 작업을 할 겁니다. 영감을 자극하는 데는 고향만한 곳이 없는 것 같아요".
파리에서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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