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와 조개의 우화'는 중국 전한(前漢) 때 유향이 지은 '전국책(戰國策)'에 등장한다. 군웅이 할거했던 전국시대에 패권 다툼에 빠져 파멸의 길로 접어드는 줄도 모르는 군왕들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제나라 왕이 위나라를 치려하자 해학과 변론에 능한 세객(說客) 순우곤이 고사 '방휼지쟁(蚌鷸之爭)'을 인용, 전쟁을 포기하고 백성을 보살피도록 했던 모양이다. 개와 토끼가 쓸데없는 다툼을 벌이다 쓰러져 지나가던 사람에게만 이득을 주었다는 '견토지쟁(犬兎之爭)'과도 유사한 내용이다.
▲당시 살벌한 전쟁의 한가운데서도 '풍자(諷刺)'의 여유가 넘쳤던 셈이지만, 대선을 앞둔 지금의 정치 상황을 바라보고 있으면 도무지 예사롭게 여겨지지 않는다. 끝간 데 없는 정치 투쟁은 마치 황새와 조개가 서로의 주둥이를 물고 먼저 놓으라고 고집을 부리는 형국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민심이 천심'이라지만, 이 같은 소모전을 국민들은 과연 어떻게 여길까.
▲최근 '대쪽이야 개쪽이야 회창이' '노풍이야 허풍이야 무현이' '용꿈이야 개꿈이야 몽준이' 등 대선 후보 이회창·노무현·정몽준씨를 주인공으로 한 풍자집 세권이 나란히 출간돼 화제다. 김영삼 대통령을 풍자한 'YS는 못 말려'를 낸 바 있는 개그작가 장덕균씨가 각 후보마다 100여 꼭지의 이야기들을 엮어 펴냈다 한다. 문학과 예술에 풍자의 기법이 통하지 않으면 경색된 사회라는 점에서 이런 책들이 나올 수 있는 분위기는 그나마 다행스럽다.
▲문학이나 예술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풍자의 기법은 본래 현실에 대한 부정적이며 비판적인 태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이러니와 비슷한 면이 없지 않으나 날카롭고 공격적인 의도를 지니고 있어 그보다 한결 강도 높게 대상의 약점을 폭로하고 규탄하는 속성을 거느린다. 이 기법은 지배계급을 비꼬고 비웃기 위해 생겼기 때문에 그 대상인 지배계급은 싫어하게 마련이며, 대중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경계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익히 보아 왔다.
▲정치인들을 겨냥한 풍자는 일반 백성들의 슬픔과 원망 등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에서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면 할수록 창작의 자유는 물론 언로(言路)마저 위축되는 현상을 부를 수밖에 없어진다. 철학자 니체는 '웃음을 포함하지 않은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라고 갈파한 바 있지만, '반어적 경구'라고도 할 수 있는 풍자가 지니는 진리나 진실에 대해 이 땅의 정치인들은 겸허하게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더구나 정치권은 지금 '브레이크 없는 정쟁(政爭)'에 빠져 있으므로….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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