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경제야 어딘노?

산업화시대 우등생 일본은 지금 체면이 말이 아니다. '잃어버린 10년'으로 인해 일본경제가 일본병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세계적인 신문인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일본은 이제 거물국가가 아니고 쇠퇴한 중간국가(Middling State)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그뿐 아니다.

영국의 유명한 경제지인 파이낸셜 타임스 는 '일본은 한국을 배워라'고 일본의 자존심마저 슬쩍 건드렸다. 실상이 이러하자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론에 이어 일본발 위기론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80년대 경제 모범생이었던 일본이 어느새 세계 경제의 문제아로 바뀐 것이다.5%대의 높은 실업률 앞에 고개 숙인 일본 경제다.

실제로 일본의 경제 위상도 여러 군데서 추락하고 있다. IMF 자료를 근거로 만든 구매력 기준 2001년도 세계 GDP(국내총생산) 순위를 보면 중국에게 2위의 자리를 내주고 3위로 내려앉았다. 일본으로선 충격일 것이다. 물론 구매력을 기준으로 하지 않은 GDP는 여전히 일본이 2위이고 중국은 10년 전 12위에서 껑충 뛰기는 했으나 아직은 6위이다.

어떻든 국시(國是)까지 '통일중국'에서 'IT중국'으로 바꾸고, 소위 '3대표론'을 내걸고 노동자.농민의 당인 공산당에 자본가까지 가입시키는 오로지 경제만을 위하는 '실사구시' 앞에 일본의 체면은 구겨진 것이다.

◈한국은?

한국은 어떤가. 우선 세계가 놀라는 빠른 속도로 국가 신용을 회복했다. 무디스나 S&P 등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5년 만에IMF전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A등급을 받았다. 게다가 IMF위기 속에서도 몇몇 정보기술(IT)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자 일본경제신문사는 서울특파원 글에서 '불가사의한 나라, IT 강국'이라는 제목으로 이 분야의 성공담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우리경제에는 성공만 있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우선 국가 연구기관인 KDI(한국개발원)도 지난 1월 '비전2011프로젝트'라는 보고서를 통해 금융, 기업, 공공, 노동 등 4대 개혁이 기대이하라고 평가했다. 2001년도 우리경제가 어려울 때는 'IMF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말이 바로 KDI 원장과 여당의원 입에서 나왔을 정도였다. 경제의 미래인 수출과 설비투자가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니 그러한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도 개혁을 등한하면 일본형 경제로 갈 수도 있다는 경고가 지난해부터 이곳 저곳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데 있다. 가장 최근 이러한 경고를 한 곳은 다른 곳도 아닌 한국은행이다. '일본경제의 장기침체의 원인과 시사점'이라는 이 보고서에서 관치(官治)냐 아니냐 하는 패러다임 문제와 제조업과 비제조업 간의 노동생산성 격차문제, 그리고 외국인 투자문제 등에서 잘못하면 일본병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경고가 있었다.

매년 발표되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의 경쟁력 조사에서는 우리는 일본보다 낮고, 기업경영 관행 부문 순위나 노사관계 국제경쟁력은 조사 대상국 중 하위권에 속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해외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평가도 외환위기 이후 높아지기는 했으나 아직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겐이치(大前硏一) 역시 독설가답게 "한국과 일본의 경제는 제조업이 조만간 중국에 밀리고 서비스업도 대안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낮아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며 비관론 쪽에 섰다.

◈우리는 政爭만

그럼 우리 경제에 대한 칭찬과 비판은 어느 쪽이 맞는 것인가. 그 답은 아마도 IMF위기를 넘겼다는 데서 총론은 긍정적이고 각론 부문에서는 노동시장 개혁부진 등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결국 우리는 성공한 것도 실패한 것도 아니다. 앞으로 하기에 달린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10년 뒤에는 뭘 먹고 살 것인가를 걱정해야 하고 박정희 모델 다음의 한국식 모델은 어떠해야 하는지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게이트니 병풍이니 하는 데에 세월을 다 보내고 있다. 전술만 있고 전략이 없다고 외쳐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어느새 우리는 경제를 관심의 중심 밖에 두고 있다. 우리의 살길인 '비전 2011'이나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 국가론, 물류거점 및 서비스 중심지론이니 하는 것은 아직은 거론 단계의 미완성품으로 남아 있어도 그만이고 세계가 이웃끼리 자유무역지대(FTA)를 만들어 우리를 왕따시켜도 그만이다.

아무리 지금은 계획의 시대가 아니고 원칙의 시대라 해도 전략은 있어야 하고, 경제제일주의 시대가 아니고 민주제일의 시대라 해도 이렇게 소 닭 보듯 경제에 무관심해도 좋은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이러다가는 일본을 닮을 수도 있다. 정치인 눈에는 정권만 보이고 경제는 보이지 않는가.

서상호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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